수도산-단지봉-좌일곡령-가야산종주 - 텍스트판

위치: 경남 거창군 가북면, 합천군 가야면 - 경북 김천시 증산면, 성주군 가천면, 성주군 수륜면
코스: 수도암 - 단지봉 - 좌일곡령 - 1124봉 - 목통령 - 분계령 - 두리봉 - 부박령 - 가야산 - 치인 집단시설지구
교통: 수원서 김천경유 거창-함양행버스 탑승(10500원. 토요일이라 김천까지 가는 열차는 모두 입석밖에 없어서)김천서 하차, 김천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증산행(하루 6회 요금 1020원)버스를 2시 20분에 탑승, 가랫재를 넘어 증산면소재지에서 하차. 수도암까지 1만원주고 갤로퍼탑승, 수도암 하차. 해인사에서 2400원하는 고령행 버스 탑승, 고령에서 고려여객(합천, 고령, 성주를 거쳐 고속도로를 운행한뒤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는 버스 9시 출발 요금 15200원)버스를 탑승.
숙박: 수도산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능선봉에서 야영, 가야산 국립공원 지정 야영장에서 야영. 치인리에 민박, 여관등 숙박시설이 많다. 수도암아래 수도리에 민박집 여러곳 있음.
문화재와 볼거리: 수도암 3층석탑(보물 297호), 석조비로자나불(보물 307호)

산행:<> (8.28-8.30일 1999년)

<>수도산 - 가야산 종주 사진. 이미지 맵 지도. (산행기텍스트포함) -->그래픽판

가야산에 갈 일이 있으면 김천에서 대덕으로 나와 가랫재를 넘어 성주댐으로 접근한 뒤 가야산으로 가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있는 나에게 수도산은 언제나 그 갈래가 많은 능선, 넓은 계곡, 풍성한 숲, 평범한 듯하면서도 반드시 그 높이만은 아닌 여러가지 이유로 비범해보이는 수도산을 언제 한번 오르나 하고 숙제를 끝내지 못한 학생처럼 찜찜한 느낌에 빠져들곤 했다. 수도산(1317m)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가랫재라는 고개 때문이다.
물론 거창으로 가다가 우두령에 이르기전 왼쪽으로 화려하게 곧추선 갈매빛 능선들도 수도산의 산악미를 느끼는데는 부족함이 없지만 가랫째쪽이 우두령보다는 수도산을 더잘 볼 수 있게 해준다. 수도산 산자락을 타고 넘으며 숲에 뒤덮여 있어도 억센 등걸을 드러내고 아기자기 하다기 보다는 장엄한 산악미를 이모저모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수도산을 보고도 깊은 인상을 느끼지 않는 산꾼은 없을 것이다.


사진:가야산 정상

이번에 종주산행코스로 이름난 수도산-가야산종주를 결행하기 위해 떠난 것은 토요일 오전. 요즘 열차사정을 잘 모르는 필자에게 입수된 첫 정보는 당일 모든 열차편에 남은 표는 입석표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영장비까지 지고 지하도를 건너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마침 김천을 거쳐 거창, 함양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이 버스는 김천다음에는 대덕을 거치게 되는데 사정을 잘 알았다면 김천시외버스에서 잘 오지않는 증산행을 타는 것 보다는 지나가는 버스편이 많은 대덕으로 일단 간 뒤 대덕에서 택시를 타고 청암사나 수도암으로 가는게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덕은 무풍에서 오는 길, 거창으로 가는 길, 증산으로 가는 길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다. 대덕에서 고개만 넘으면 증산면이다. 청암사로 가려면 고개를 넘으면 나오는 첫번째 동네인 평촌리에서 들어가면 된다. 청암사에서 수도암으로 가는 길은 꽤 멀어 산자락을 따라 길게 돌아올라간다. 떠날 때부터 안그래도 긴 장정인데 첫부분에서 기운을 다소나마 세이브하는 방향으로 선택한 것이 산행깃점을 수도암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딴에는 머리를 굴려본 것인데 정작 증산에서 수도암까지 1만원을 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자 이런 식으로 산행을 해서는 안되는 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백화산에서처럼 땡볕에 걸어서라도 가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그런데 그러지 못하게 된 것은 그때의 고생이 뇌리에 박혀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증산에서 수도암까지는 실제로 차로 가보니까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가기엔 너무 먼 11km정도는 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증산의 수도산식당(0547-430-0009 임홍섭)에서 식당겸 수퍼마켓 주인이 친히 모는 갤로퍼를 타고 수도암으로 올라갔다. 증산까지 와서 수도암으로 가는 사람들은 대개가 이집 식당주인차 덕을 보는 모양이었다. 종주산행만 아니라면 대부분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수도암까지 가는 것도 아주 멋있는 산행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계곡은 암반과 큰돌이 많아 곳곳에 비경이 있는데 특히 용소, 용소폭포등의 경관은 빼어나다고 한다. 계류가 맑고 차거워 여름날 한갓진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하다. 식당주인이 열심히 설명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실제로 숲으로 막혀 직접 볼 수 없는 경관은 가능하면 차를 세워서라도 보고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속으로 반드시 다시 와서 보리라는 다짐을 하며 지나간다. 그 정도로 계곡은 꽤 인상깊은 곳이었다. 가야산에 홍류동이 있듯이 수도산엔 수도산계곡이 있는 것이다. 호랑이애비에게 개새끼는 없는 법이니까.
수도암으로 올라가면 넓은 마당이 나타나고 산을 등지고 있는 쪽은 그 위 대적광전과 약광전을 위하여 쌓은 축대와 길고 높은 축대가 주는 단조로움도 해소하고 절을 찾는 사람들의 갈증도 해소할 맑은 물이 넘치고 있는 거대한 수조가 놓여있다. 축대와 90도 각도를 이루며 조금 떨어져 안치된 건물은 꽤나 긴 관음전이다. 요사채인 듯한 관음전은 그 쓰임새에 비해 아주 안정된 잘 지어진 집이라는 느낌을 주며 푸른빛 나는 기와가 품위를 높여주는 듯하다. 이 마당에서 정갈하게 쌓아 올린 돌계단을 올라가면 동서 2개의 삼층석탑이 보이고 그 사이에 약간 파손은 되었지만 고졸한 양식을 온존하고 있는 석등이 있고 그 사이에 "도선국사 운운" 하는 글귀가 보이는 비석을 닮은 돌이 하나 꽂혀있다.
수도암이나 청암사는 원래 증산면 소재지에 있었다는 큰 절 쌍계사의 암자에 지나지 않았으며 현재 증산면에 속한 대부분의 땅은 쌍계사의 사유지였다고 한다. 이 얘기는 증산으로 올 때 앞자리에 앉았던 비구니 한분이 그 옆에분에게 하는 얘기를 반은 귓가로 흘리며 들은 것이다. 공양때가 되면 쌀뜨물이 십리밖 개울에서도 비쳤다고 한다. 이 얘기를 갤로퍼주인에게 했더니 자기집 뒷동산에 절터가 있다고 하며 맞장구를 친다. 이 절은 625때 소실되었다. 어쨌거나 수도암은 쌍계사시절부터 수도승을 위한 절집으로 그 기능을 부여받았던 내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절의 분위기는 초탈한 듯한 세속을 떠난 느낌이 부지불식간에 가슴을 파고든다.
벗겨진 처마와 창호의 단청마저 탈속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나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러한 느낌은 결코 표피적인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더 깊숙한 그 무엇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전에도 어디선가 얘기한 적이 있지만 건축가 김수근은 종묘의 앞마당에 서면 하늘을 느낄 수 있다고 했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수도암은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이다. 공기부터가 계곡바닥의 공기와는 다르다. 창호를 모두 열어놓았는데 두 당우에 안좌한 부처임은 하나같이 석불이다(석불 모두 보물로 지정). 저녁이 다가오는데 예불하거나 독경하는 스님도 없고 흐르는 것이라고는 가까운 계곡의 물소리와 서늘한 저녁공기 뿐이거늘 왜 이리도 사위는 적막하고 마음은 경건해가기만 하는가?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탑으로 대석에 새긴 부처상이 세월의 조탁에 의해 선은 흐려지고 이미지는 모호해진 것이 오히려 더욱 값진 영상으로 다가오는 탑이다. 이런 높은 절에 이런 아름다운 탑이 선 것은 우리선인들의 믿음이 궁벽한 곳까지 보편적이었으며 또 그 믿음이 굳건했음을 입증하는 것일 터이다. 대적광전은 특별한 수식이 없는 수수한 맞배지붕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수도암의 대웅전으로 격에 걸맞다. 절의 이구석 저구석을 분주히 돌아다니던 필자는 석탑앞에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가야산을 보기위해서였다. 가야산은 군더더기 없는 암산으로 접근로가 없을 듯한 웅장한 연꽃모양을 하고 목통령에서 동북쪽으로 뻗어가는 능선 뒤쪽에서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가야산의 높이는 1430m. 수도암의 해발높이는 1000m. 불과 430미터 차이인데 저토록 높고, 아련한 느낌을 줄 수 있을까? 이것은 물리적인 계산법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목통령에서 시작되는 능선봉들도 1100m에 가까운 산들이다. 무엇이 가야산으로 하여금 그토록 높아보이게 하는 것일까? 원근법의 적용도 받지 않는듯한 이런 현상은 왜 생기는가? 수도암에서 보는 가야산의 산형이 선반에 올려놓은 연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현수도암에 절터를 잡은 결정적인 원인일 것이다. 이런 원경, 이런 산형, 피안의 것과 같은 아련함과 현실이 교차하는 희한한 느낌을 주는 이런 절과 대상물이 우리나라 어느 곳에 또 있는지 별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적멸보궁? 두륜산 대흥사? 아니다. 대흥사에서 본 두륜봉도 아름다웠고 적멸보궁의 터와 전망은 풍수가들도 알아주지만 수도산 수도암과 가야산의 절묘한 상관관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삼층석탑의 불상과 가야산을 오버랩시키면서 필자는 이 절과 탑이 피안의 정토를 희원하는 중생들의 기도에 다름아니라는 나름대로의 추론을 해본다.
수도암의 감동을 뒤로 하고 수조의 물을 받아 수도암 오른쪽의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물병(수퍼마켓의 제일 작은 생수병) 2개에 물을 채워 산을 올라간 것은 나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목통령에서 식수를 보충할 때까지 한번의 야영, 그리고 적어도 5시간의 산행이 필요한 데 그동안의 음료수량을 과소측정한 것이다. 측정은 무슨, 생각없이 물준비를 했다가 산행후반기에 곤욕을 치른다. 지금 생각하면 적어도 물 6병이 필요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배낭무게에 신경을 쓰다가 꼭챙겨야 할 것을 빠뜨린 것이다. 야영한 다음날 아침에 벌써 물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수도암 수조의 물도 수조에 떨어지기 전의 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조를 거쳐 흘러나온 물은 아무래도 전자보다 못할 것이다.
수도암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은 완만하고 능선에 올라서면 평지와 같은 길이 오랫동안 연이어져 산행하기가 좋다. 지난번 태풍으로 노송의 큰 가지가 부러져 길을 막고 있는 곳도 여러군데다. 능선엔 노송은 많지 않았지만 신갈나무등 굴참나무 계열의 나무가 커서 숲엔 햇볕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이다. 바람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덤프트럭 몇대에 나누어 실어야 할 정도의 커다란 소나무가지도 여지없이 찢겨져 다른 나무들을 덮쳐 그 나무들도 제대로 클지 모를 정도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전국에 떨어진 나무가지와 잎의 무게를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 수백만대분은 너끈히 되지 않을까?
숲사이로 가끔 보이는 수도산 정상은 꽤 멀다. 가랫재에서 올라오더라도 적어도 2시간 이상이 걸릴 것 같다. 버스기사에게 부탁하면 가랫재에서 내릴 수 있다. 직선거리로 4.5km정도 된다. 그렇게 하면 증산에서 1만원을 주고 수도암까지 올 필요는 없다. 그대신 수도암을 보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다.
약간 경사진 곳을 올라가니 능선암봉이다. 바위가 조금 많은 봉우리는 훌륭한 전망대가 된다. 수도암에서 보던 가야산아래쪽을 가리던 가리개가 훨씬 아래쪽으로 내려가 가야산은 더욱 높아 보인다. 수도산은 봉우리 3개의 정상부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암봉인 듯하다. 정상엔 바위가 하나 뾰족하게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다. 나중에 보니 돌무더기였다.
정상능선에 올라서면 가야산으로 가는 길과 수도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갈린다. 이 지점에서 정상까지는 30 또는 40m정도의 거리밖에 안된다. 정상은 두개의 암봉으로 되어있다. 두 봉우리사이에 안부라고 할 수 있는 낮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암쪽 능선에서 보면 봉우리 사이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으나 반대편에서 보면 확연히 구별될 듯하다. 수도암 반대쪽에 정상부의 단애가 있는데 두 봉우리는 별도의 단애를 갖고 있다. 봉우리라기 보다는 위가 테라스형으로 널찍한 바위로 된 조금 높은 곳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하지만 단지봉으로 조금 내려가다보면 저녁 해질 무렵에 하얗게 빛나는 둥그런 바위 봉우리가 푸른 숲 위로 또렷한 첨봉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2m는 훨씬 더 될듯 돌무더기가 높이 쌓여있는 정상이 아니라 바위봉우리 뒤에 수도암에서 올라온 길과 정상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수도산의 동봉격인 봉우리다. 수도암에서 수도산 정상까지는 2시간이 걸렸다. 수도산 정상에 서니 시간은 6시를 가리킨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고도를 별로 낮추지 않고 억센 힘을 드러내며 꽤 길게 뻗어나간다. 이 맥은 김천과 거창을 잇는 우두령에서 낮아졌다가 북으로 뻗어 국사봉에 이른 다음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뒤 다시 북으로 뻗어가면 백두대간 대덕산(1290m)에 이른다. 그쪽은 28일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친 끝이라 습기가 많아 스카이라인이 별로 또렷하지 않지만 남덕유에서 향적봉까지는 아스라하게, 그리고 대덕산은 보다 분명하게 어림이 된다. 백두대간 스카이라인 뒤로 몰려오는 권운(卷雲)의 두터운 구름층은 다시 날씨가 흐려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케 한다. 내일은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싶다. 땅꺼미가 내려앉을 기미를 보이는 시각 정상에 서서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노을을 보는 것은 언제나 차를 탈 무렵이었던 당일산행의 시간스케줄을 훌쩍 뛰어넘는 데는 정신적 해탈감과 삶의 구조조정이 한몫을 했다. 돌무더기를 옆에 두고 수도암에서 볼 때보다 더욱 높아진 가야산 원경을 바라보거나, 방향을 180도 돌려 덕유산이나 대덕산 쪽을 보거나 솔바람 소리와 매미소리외엔 딴소리가 전혀 들리지 적막한 주위, 어둑한 산 그림자, 동쪽을 보고 사진을 찍으려면 길게 뻗은 자신의 그림자가 나타나 그것을 안보이게 하려고 몸을 남으로 조금 돌려야 풍경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 대기중에 눈에 띄게 금빛이 많아져 나뭇잎도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돌빛도 누렇게 변색되는등 석양의 무드가 가슴을 진한 감동에 젖게 한다.

수도산-가야산 종주는 나무와 풀과의 싸움

적막에 쌓인 수도산의 석양을 즐기다가 수도산을 내려와 단지봉 쪽으로 가다가 완만한 안부의 조금 높은 개활지에서 잠을 자야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마음이 다급해진다. 햇살에 금빛이 많아지면 얼마 안가 해가 진다는 것을 깃대봉이나 조령산 산행때 경험한 바 있다.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급했지만 산을 빨리 내려올 수 있는 잇점은 된다. 내려오는 사이에 야영한 흔적이 보이는 곳이 있었지만 수도산록이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단지봉이 가까운 곳이어야 한다고 다짐하며 갈길을 재촉한다. 1시간여만에 수도산을 내려와 안부에 도착한다. 그러나 안부에는 개활지는 있어도 억새와 풀이 웃자라 있어서 야영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시야의 확보도 문제였다. 숲이 둘러처진 곳이 많아 시야는 50m도 확보되지 않았다. 밤이든 낮이든 쉴 때에는 본능적으로 음습한 곳보다는 양명하고 시야가 넓게 확보되는 곳을 찾게 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밤이면 어두워질 텐데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음습한 곳은 밤이나 낮이나 좋지 않은 망상을 자아낸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랍신화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숲은 정령의 나라라고 하지 않은가.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줄기차게 찾고 있는 눈에 그런 곳은 나오지 않고 길은 점점 풀섶에 파묻히고 다래나무과의 덩굴이 얼키고 설키어 터널을 이룬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게다가 지난번 태풍으로 넘어진 나무들이 간헐적으로 나타나 길찾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헤드랜턴을 켜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웃자란 풀섶위를 비치기만 하니 말이다. 그래서 눈으로 길을 찾는 일은 아예 포기해야 할 정도가 된다.
사실 말이지 수도산-가야산 종주산행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도 아니고 물도 아닌 바로 이 나무, 풀과의 싸움이었다. 억새는 얼굴에 면도를 하려고 달려들고 다래나무과 덩굴은 배낭고리를 잡고 갈길바쁜 나그네를 나꿔챈다.
단지봉 전후의 안부와 분계령과 두리봉이 가까운 능선에서는 덩굴나무에다 2m이상은 되는 억센 싸리밭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숲사이로 난 좁은 회랑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여유밖에 없어서 폭이 넓은 배낭을 지고 통과하려니 죽을 맛이다. 이런 곳에서 비를 만난다면 산행은 상당히 어려워질 것 같다. 판초우의를 걸치고 이곳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닐이든 고어텍스든 온몸, 배낭 전부를 감싸지 않는다면 마치 물속을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코스의 절반이상이 이런 난감한 관목숲과 억새밭으로 뒤덮여있으니 야영장비까지 짊어진 형편으로는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억새와 덩굴로 뒤덮인 곳에서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은 눈이 아니고 발이다. 디디는 발자국에 장애물이 없으면 그것이 길이다. 참 희한한 산행이다.
이제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아직도 양명한 곳은 나오지 않고 시야를 가리는 숲과 억새와 잡목숲의 연속은 끝없이 계속된다. 몸은 파김치가 되어가고 야트막한 능선봉을 오르면 개활지가 나오겠지 하고 허위단심 올라가면 웃자란 억새와 덩굴나무의 혼란한 식생이 기다리고 있어 쉬고 싶다는 절실한 바램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이런 과정이 꽤 오래 지속되는 사이 정신없이 길을 가다가 보니 덩굴과 나무가지 사이에 오도가도 못하게 포박된 신세가 되어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밀림속에 퍼질앉아 물도 마시고 배낭점검도 하면서 한숨 돌리기로 한다. 랜턴을 끄면 어둠이 사방으로부터 몰려와 의식마저 없애버릴 듯한 두려움이 번져온다. 헤드랜턴에 비친 숲은 2,3m저쪽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조금 쉬고 난 뒤 덩굴과 나무가지를 헤치고 돌아나오니 길은 바로 옆에 있다.
숲사이로 야트막한 능선봉이 보이고 그 뒤로 단지봉이 높다닿게 긴 테라스를 형성하고 있는 모양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곳도 위는 평탄하지만 능선에서 약간 불거져나온 엄연한 능선봉이었다. 넘어진 소나무를 돌아가니 키가 크지 않은 풀이 덮인 풀밭이 꽤 넓은 편이고 텐트를 칠만한 공간도 있다. 원래는 소나무아래 형성된 조금 넓은 길이었지만 소나무가 넘어지면서 아늑한 공간으로 변해버린 곳이었다. 앞에 단지봉도 보이겠다. 억새와 덩굴의 키도 낮겠다. 이곳이 적당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시간은 7시 30분경이었다. 텐트를 치고 우선 누워서 숨을 고른다. 그런 다음 저녁을 대충 챙겨먹고 다시 드러누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들다가 메모를 정리하다가 한다. 한동안 시간을 보낸 다음 밖으로 나와보니 개활지 가장자리의 소나무 뒤로 달이 떠있다. 단지봉의 검은 실루엣이 길게 드러누워있고 달빛은 단지봉 한 모퉁이에 희미한 달빛 세례를 부어 그곳이 반짝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리산 벽소령의 밤이 생각난다. 달빛 비치는 고산의 밤은 야릇할 정도로 환상적이다. 숲그림자는 그런 느낌을 더욱 강열하게 해준다. 그러고 있는데 숲사이에 불빛이 비치고 있다. 바싹 긴장된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그 불은 숲으로부터 빠져나와 커다란 U자를 그리며 눈앞까지 와서는 다시 숲으로 돌아간다. 반딧불이였다.
달빛이든 별빛이든 빛이 비친다는 사실이 아무도 없는 고산의 한 능선에 머물고 있는 나에게 위안을 주었고 그것은 텐트안에 드러누워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지봉이 내려다보는 것이 수호자처럼 든든한 느낌을 주었다. 깜깜한 숲속에 텐트를 쳤다면 온갖 망상에 시달리고 있을 시간이 아닌가? 다시 텐트안에 들어가 한동안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다시 밖에 나가보니 달은 중천에 떠 있지만 희뿌연 수증기가 그득한 숲의 하늘은 혼몽하여 마치 월급날 3차까지 끝낸 샐러리맨의 가물가물한 의식속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달과 산과 우유빛 하늘이 표현주의자의 그림처럼 환상적이었다고 할까? 여하튼 절대자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여 새벽녘까지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4시 50분쯤 꿈인지 생시인지 사람소리가 들린다. 꿈을 꾸고 있는건가? 그런데 사람들의 말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한떼의 산꾼들이 숲의 모퉁이로 부터 급작스레 들이닥친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그리고 이 장대한 능선종주코스는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 인기코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부산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모두 14,5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선두, 중간, 후미, 그리고 가장 나중의 후미를 이루어 띄엄띄엄 지나간다.
뒤따르는 사람들 대부분은 풀섶속에 감추어진 길을 찾지 못하고 풀밭에서 방황하다가 텐트를 발견하고 길이 어디냐고 묻는다. 그리고 잠잘 때 무섭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가이드는 뒤처진 사람들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작은 배낭을 보면 그들이 시간안에 가야산에 도착하리라는 확신이 선다.
이들이 수도암 아래 민박집에서 산행을 시작했다면 새벽 3시쯤 출발했으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단체산행일 경우 시간단축 가능성은 커진다. 약간은 의무감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가야산도착을 1시로 잡고 있는 것을 보면 10시간 산행으로 종주를 끝낼 계산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억새와 풀섶이 대단하다고 혀를 차면서 희뿌옇게 새벽이 밝아오는 능선 아래로 첫팀이 사라진지 20여분 뒤에 중간 팀이 오고 중간 팀이 지난 뒤 다시 20분쯤 뒤에 노부부가 나타날 무렵은 날이 완전히 새었다. 이들이 지나간 뒤에도 다시 한 팀이 지나간다. 필자는 12시간이 걸려 가야산에 도착하기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이들이 모두 무사히 하산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들이 수도암과 수도산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은 짐작이 되지만 반직업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에겐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무얼 보지 않았건 보았건 별 상관할 일은 아닐 것이다. 종주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말이다.
물부족에 시달리며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 6시경 출발한다. 또다시 다래나무과의 덩굴과 억새, 싸리덤불의 터널이다. 그러나 어제 저녁 보다는 뚫고 가기가 났다. 그나마 앞선 팀들이 길을 틔워 놓았기 때문이다. 이슬에 젖은 풀섶의 물방울도 많이 떨어져 있어서 옷도 별로 젖지 않는다. 그러나 배낭이 큰 탓으로 관목숲의 저항은 계속된다. 눈앞에 보이는 단지봉도 평탄하기는 하지만 능선봉에 틀림없는 봉우리를 두어개 넘어야 가까이 다가왔다. 올라가는 길은 급경사는 아니다. 경삿길에는 풀섶이 없어서 올라가기가 좋다. 1100m에서 1326m봉우리로 200여m 올라가는 데에도 힘이 든다. 길주변의 나무는 모두 신갈나무 계통이다. 그러나 깊은 산골의 먼 능선임에 비해 나무의 줄기가 너무 앳되다. 오래전에 산불이 휩쓸고 간 탓이 아닐까? 단지봉으로 올라가면서 수도산을 바라본다. 아침안개에 뒤덮여 산의 희미한 윤곽만 확인될 뿐이다.
단지봉은 1326m 높이로 가야산에 비해 불과 104m 낮을 뿐이다. 그런데도 한쪽은 언덕처럼 낮아보이고, 한쪽은 알프스의 준봉처럼 높아보인다. 단지봉 정상은 그야말로 평탄하고 풀섶도 낮게 자라 전망이 좋다. 야생화가 여기저기 피어 초가을 같은 느낌을 준다. 단지봉에서부터 수도산-가야산 능선 남쪽의 가장 큰 계곡인 거창군 가북면의 석가천 계곡이다. 이 계곡의 북단을 형성하는 긴 능선은 가야산 직전의 두리봉에 가서야 끝이 난다.
수도산 - 가야산 종주코스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긴 능선이다. 단지봉에서는 두가닥의 길이 있다. 하나는 동으로 난 길로 가북면으로 내려가는 길인듯싶다. 가야산으로 가는 길은 북쪽으로 난 길이다. 풀섶 옆의 키작은 나무에 리본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 부산팀들 중 일부가 동쪽 길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단지봉일대에 안개가 끼여있어서 길을 잃을 확률은 굉장히 높다. 아침안개에 휩싸인 가야산은 그 석화성 일부를 잠깐씩 보여주지만 감질만 난다.
단지봉에서 좌일곡령으로 가는 길은 대체로 평탄한 길이다. 길이 평탄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 이번 종주코스의 경험이었다. 경삿길이 아닌 곳은 어김없이 풀섶과 덩굴덤불이나 억세기로는 황소같은 싸리나무 군락지가 능선을 점령하고 있어서 이들과 싸우며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좌일곡령은 능선코스중 가장 바위가 많은 봉우리이다. 접근하면서 보면 봉우리끝이 제법 예리하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가니 앞서 가던 부산팀들인 듯 길옆 낙엽깔린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붙이고 있다. 새벽에 떠났으니 잠이 부족할 것이다. 좌일곡령(1258m)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가북면 석가천계곡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가야산 치인집단시설지구에서 두리봉으로부터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을 뚫고 낸 산복도로가 꼬불꼬불 산능선을 따라 감돌아 하개금으로 내려오는 모양이 보인다. 좌일곡령에서 내려오는 길은 큰 바위돌이 엇물린 곳이라 눈이 오거나 쌓여 미끄러울 때는 위험한 곳이다. 좌일곡령에서 쉬는 사이 갈증이 심해져 목통령이 어딘가 어림해 보았으나 짐작이 가지 않는다. 좌일곡령에서 목통령까지는 보통산행시의 발걸음이라면 1시간 30분정도가 걸리지만 갈증과 피로로 시간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가 없다. 1125m봉을 넘으면 바로 목통령이 될 듯했지만 그 뒤로도 작다란 봉우리들이 두어개 더 나타났다. 갈증은 최고조에 이르러 현깃증이 날 지경이 된다. 목은 타고 입술은 바싹 말라붙어 혀끝으로 입술을 더듬으면 입가에 분말 가루가 묻어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목통령은 그러고도 30분 가까이나 더 허우적대듯 걸어간 뒤에야 나왔다. 그런데 샘이 있다는 표시같은 것은 아예 없다. 리본이 붙어있는 곳도 없다. 게다가 길도 희미하고 무엇보다 작은 봉우리가 하나 있어서 이것을 넘어야 할지 말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조령산에서는 갈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조령샘에 정확히 도착했던 것이 생각나서 이지방 사람들이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한다. 그 작은 봉우리를 넘자 조금전처럼 하개금으로 내려가는 작은 길이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작은 봉우리를 넘기전(가야산으로 가고 있다면) 에 오른쪽 오솔길로 내려가야 샘이 있을 듯하다. 어쨌건 그 길로 한참 내려갈 때는 더위와 갈증이 피크에 이르러 1분 이내에 물을 발견하지 못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내려가는 길은 꽤 멀어 산을 완전히 내려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경운기가 올라올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길이 얼마간 계속된 뒤에 오솔길로 접어든 뒤 곧장 시야에 들어온 공터에 도착한다. 누군가 여기에다 구조물을 지으려고 터를 닦다가 만 곳인 듯했다. 개울은 눈에 띄지 않고 공터옆 바위아래에 물이 괴어 있는 곳이 있다. 물은 거기서 부터 흐르기 시작했다. 잡초가 무성하고 늪지처럼 반은 물, 반은 수초로 뒤덮인 곳이었다. 좁은 웅덩이에 고인 물속에 컵을 넣어 물맛을 보니 차갑다. 땅속에서 나오는 물이 분명하다. 두타산 정상 아래 샘에서 도룡뇽알을 보면서 물을 떠서 마신 일이 생각난다. 웅덩이 앞에 서 있는 사이에 물소리가 들려온다. 왼쪽으로 조금 가자 제법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수초가 있기는 하지만 물은 차거워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쉬기로 한다. 물에 날도래가 보이는데 이것은 이 물이 일급수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부근에 펑펑 솟는 샘이 있는지 찾아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능선산행중 물 부족은 산행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키라는 것을 실감한다. 갈증이 극도에 달하면 힘이 급속도로 빠져나간다. 물은 땀으로 배출되는 수분을 보충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물이 에너지 핵심이라면 과장일까? 탈진한다는 것은 물이 다 빠져나간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땀도 식히고 머리도 감고, 죽도 끓여먹고, 쉴새없이 물을 마시고..미숫가루도 타마시고 하니 살 것 같다. 구름이 많이 끼이곤 했지만 간간히 비치는 햇볕에 텐트며 플라이며 물(이슬)에 젖은 장비들을 말린 뒤 아까 산에서 주운 빈병까지 합쳐 물을 잔뜩 넣어 다시 목통령으로 오른다. 앞에 보이는 높다란 봉우리에 오르기전 억새밭이 나온다. 99년의 가을이 거기 있었다. 으악새(억새) 슬피 우는 가을이 온 것이다. 물론 여기 뿐만 아니라 억새밭은 수도산-가야산 종주중 수없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곳 억새밭이 크기도 하고 단지봉등 조망도 좋아 마음에 든다.가을철 이 능선이 상당히 아름다울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목통령에서 동북쪽 능선을 타고 가는 사이 숲 틈새로 가야산이 보인다. 두리봉 능선위로 불끈 솟은 가야산은 이미 원경의 산이 아니라 근접해 있는 산이다. 두리봉 능선만 넘으면 금방 가야산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 부근은 가야산-수도산 종주코스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수도산, 단지봉, 좌일곡령, 목통령까지는 사실 길이 평탄한 편이라 관목과 덤불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능선의 굴곡이 심해지면서 봉우리가 계속 나타나고 안부는 깊숙이 꺼져 있어서 올라가고 내려가기가 힘이 든다. 가야산은 상당히 가까워지긴 해도 아직은 35밀리 영화를 보는 듯하다. 70밀리 와이드비전으로 능선위를 하나 가득 채울 때 까지는 걸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부박령을 내려가기 전 능선에서 본 가야산은 압도적인 화면의 거대한 영상을 상기시키는 산악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마치 이 한장의 영상을 위하여 그 숱한 고난의 길을 걸어온 것 같다. 가야산은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포름을 가지고 있다.
목통령에서 분계령에 이르기까지는 크기와 높이가 어슷비슷한 세개의 봉우리가 차례로 나타난다. 남쪽으로는 큰 나무가 별로 보이지 않고 초원을 이룬 곳이 대부분인데 이런 초원이 문자그대로 초원이 아니라 능선위쪽은 관목숲이나 덩굴나무덤불, 싸리나무 숲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그리로 난 능선길은 걷기가 힘이 드는 반면 산록은 초원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오래전에 산불이 난 결과일 것으로 보인다. 능선북쪽은 울창한 수림지대를 이루고있는 것만봐도 알 수 있다. 야영지에서 출발한 지 7시간이 되어 가는데 가야산은 분계령 서쪽의 봉우리와 두리봉 사이에 힘차게 솟아있으나 능선봉의 중첩을 한겹씩 벗겨나가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분계령 직전의 전망대로 나오니 가야산이 보이고 까마득히 꺼진 분계령이 내려다 보인다. 마주 보이는 봉우리가 두리봉이다. 목통령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이 걸렸다. 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다는 거리인데. 걸음이 차츰 느려지고 있다.
분계령이 내려다 보이는 이 전망대는 중거리에서 가야산을 조망할 수 있는 절호의 포인트다. 이제 분계령에 내려섰다가 두리봉으로 올라가면 기나긴 산행은 종착점이 얼마 안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을 누가 들었으면 픽 웃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리봉에서 부박령까지도 1시간 10분이 훨씬 넘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분계령옆 전망대에서도 두리봉보다는 낮기는 하지만 또 하나의 봉우리가 가야산 자락에 감추어져있다 시피 하다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분계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랫부분에는 노송이 우거진 길이었다. 높이 300m정도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두리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지루했다. 두리봉은 남서쪽으로 뻗는 능선이 거창군과 합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출발점이 되는 산이다. 두리봉을 지나야 비로소 남쪽을 흐르는 개울은 모두 해인사옆으로 흘러내려가 홍류동 계곡을 이룬다. 두리봉에 도착한 다음 가야산쪽으로 난 길을 가는데 갈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울창한 숲도 있지만 한동안 빽빽하여 팔이 긁히고 큰 배낭이 빠져나가기 힘든 싸리나무군락지도 있다. 이곳을 지나 능선날등에 닿으면 가야산 화면은 눈앞에 다가와 크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5밀리 화면을 극장 맨 뒷좌석에서 보다가 70밀리화면을 극장 맨 앞에 앉아서 보는 것과 같다고 할까? 여기서 경사진 산등성이를 꽤 오래 내려가면 안부가 나오는데 이곳이 부박령인 모양이다. 부박령에 이르기까지의 능선의 지형적 특성은 한동안 능선과 안부를 오르내린 기억외엔 별다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여간해서 가야산을 올라가는 길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한동안 긴 여정의 끝 부분에서 지루하게 행로를 이어갔다는 사실뿐이다. 그러자 어느새 분계령에서 두리봉 올라가듯 올라가면 공터가 나오고 가야산이 전모를 드러냈다. 길도 넓어져있다. 드디어 가야산밑에 당도한 것이다. 시계는 4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숲속을 뚫고 가야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처음엔 완만하다가 점점 급해진다. 숲으로 들어오기전 정면으로 높직이 보이는 바위에 사람들이 바위를 타는 듯 몇 개의 점이 보인다. 그동안 혼자였다가 가야산에서는 사람구경은 좀 하겠구나 싶다. 거대한 바위사이로 난 길을 한참 올라가니 더는 올라갈 수 없는 막다른 단애아래다. 바위틈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 컵에 물을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석면을 따라 가늘게 흘러내리는 물이었다. 나뭇잎을 작은 바위턱에 대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 마신다. 물이 보통 차가운 게 아니다. 이 샘터(?)는 수도산에서 가야산 정상으로 접근할 때에만 마실 수 있는 샘터이다. 조금 되돌아 내려가니 오른쪽 산록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거석의 너덜지대 같은 데가 한동안 나타나다가 숲 사이로 큰 암괴가 보인다. 드디어 정상이 눈앞에 다가왔다. 길은 넓어지고 숲을 나오자 정상바위아래의 평탄한 길이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철사다리가 보인다.
정상에 올라선 시각은 6시였다. 이번도 지난번 백화산-조령산-3관문산행처럼 12시간이 걸렸다. 단출한 차림에 배낭도 적당한 규모라면 10시간 정도면 가능할 듯도 하다. 6시의 가야산 정상은 사람은 모두 내려가 버려 한 사람도 없는 적막한 산정이다. 수도산쪽을 보니 산록을 쓰다듬듯 하얀 홑이불같은 안개자락이 아주 천천히 분계령 직전 형제봉 능선을 넘고 있다. 수도산은 또렷이 안보이고 단지봉이 겨우 어림될 뿐이다. 거인의 발걸음 처럼 지그재그형으로 그려진 수도산-가야산 능선의 내력은 구름속에 감추어져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단지 중첩된 봉우리들이 산재한 모양을 보일 뿐이다. 아무도 없는 가야산 정상은 황혼녘의 적막속에 거친 암봉들이 줄이어 솟아 있는 칠불봉 능선이며, 성주군 가천면쪽으로 뻗은 서쪽 능선이 장중하다. 운무를 들쓰고 있는 백련암뒤 능선이나, 멀리 수도산쪽 능선등 사방에서 가야산으로 연결된 능선들이 가야산을 위해 부복하고 있는 듯한 정상에서 오늘의 긴 여정을 잠시 생각해본다.
가야산에서 내려가다가 대피소에서 쉬는 사이 날이 어두워졌다. 물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가야산 국립공원에 전화를 건다. 더는 내려가기가 힘이 드니 대피소에서 야영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야영에 대한 국립공원측의 규정은 완강하여 아침에 혹시라도 불법야영으로 간주될 가능성을 미리 없애기 위해서였다. 저녁에 가야산을 올라갈 때 헬리콥터 한대가 야영장 위쪽 헬기장에 내리는 것이 보였다. 바위에서 미끄러진 부상자가 있어서 헬기가 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야산 국립공원쪽은 조금 긴장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가능하면 내려와서 국립공원 야영장에서 야영을 하라고 한다. 대피소에서 치인집단시설지구까지는 3km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며. 플래시를 켜고 내려가는 밤길 걷기는 꽤 힘이 들고 도대체 속도가 나지 않는다. 특히 가야산-해인사 내리막길은 돌부리가 많아 여간 신경쓰이는 코스가 아니다. 밤이면 더욱 어렵다. 가물가물해지는 헤드랜턴과 플래시를 번갈아 켜며 가는데도 무릎이 돌에 부딪치는 일이 생긴다. 가벼운 찰과상이긴 하지만 피로하고 지쳐있을 때의 야간 산행은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을 실감한다.
다 내려와 다시 야영장 위치를 알려달라고 가야산 국립공원에 전화를 하니 차를 가지고 나와 야영장까지 안내를 한다. 야영장은 치인 집단시설지구 위쪽에 있었다. 요원들이 민박을 하라고 친절히 말했지만 야영을 하겠다고 하자 텐트까지 함께 쳐준다. 그들은 내가 대피소에서 내려와 주어 고맙다고 했다. 이런 친절한 국립공원요원들도 있다. 다음날(30일)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수도산-가야산 종주때 비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