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793.5m

위치: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 완주군 구이면 - 김제시 금산면

코스:
1.금산사 - 부도전앞 청룡사갈림길 - 송림능선 - 주능 - 장근재 - 암봉 - 정상 - 공터 - 능선 - 금동계곡 - 부도전 - 금산사
2. 중인동 - 금선암 - 능선 - 정상 - 암봉 - 무제봉 - 수양사 - 대원사 - 선녀폭 - 상학
3. 금산사 - 눌연계곡 - 정상 - 암봉 - 동곡암 - 천룡암 - 선녀폭 - 상학

교통편: 전주시내 - 중인동(시내버스 운행 20분배차), 전주시 - 구이면 상학 (시내버스 운행 30분배차. 좌석 900원, 일반 700원 40분소요)
숙박:금산사행운민박(민박 063-548-1457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206), 금산여관(여관 063-543-4062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285), 동원장여관(여관 063-548-4300.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164), 모악산유스호스텔(유스호스텔 063-548-4402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165 전주장여관, 모악산장(여관 063-548-4411~2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153)

문화재와 볼거리:
금산사 : 미륵전(국보제 62호), 노주(보물 제22호), 석련대(보물 제23호), 혜덕왕사 진응탑비(보물 제24호), 오층석탑(보물 제25호), 석종(보물 제26호),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당간지주(보물 제28호), 심원암 북강3층석탑(보물 제29호),대장전(보물 제827호),석등(보물 제828호), 금산사 대적광전.

산행:

 화보: 좌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1.장근재 2.암봉 3.암봉에서의 계곡조망 4.금동계곡의 와폭하단 5.금년 처음 본 3.21일의 제비꽃 6.금동계곡 와폭의 상단 7.주능선에서 금동계곡으로 내려오며 뒤돌아본 금동계곡 초입의 산록. 정상의 안테나가 조금 보인다.

전라북도의 명산 모악산은 그 품 안에 금산사를 품고 있어서 더욱 빛나는 산이다. 모악산은 워낙 오래전에 등산했던 산이라 이 산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한 상태여서 기억도 새롭게 하고 산야에 어린 초봄의 아지랑이라도 바라보려고 호남고속도로 달려내려온 것이다. 전주를 지나 김제인터체인지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보면 왼쪽으로 웅장한 산괴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길쪽으로 가까운 봉우리들은 모악산의 북서방향 지능선상의 402봉, 494봉등이다. 그 뒤쪽으로 물결모양으로 일렁이는 본 봉우리와 주능선봉들이 아련하다. 멀리서 보아도 영산의 모습이 약여하다. 강원도에 가면 793m라는 높이는 대접을 받을 수 없지만 우리나라 제일의 김제 만경평야 등 평야가 많은 저지대에서 이 높이는 우람하기에 손색이 없다. 고속도로에서 내려가는 방법은 김제로 들어가는 인터체인지와 금산사인터체인지가 있다. 오늘은 금산사를 지나 개울가 큰길을 따라 가다가 청룡사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서서 길이 고부라지는 어간에서 송림이 울창한 능선을 따라 주능선에 이른 다음 장근재를 지나, 정상 대접을 받고 있는 모악산 정상(기지국, 송신소등이 들어서서 접근할 수 없다) 남쪽의 암봉을 거쳐 금동계곡을 보고 금산사로 내려오는 원점 회귀산행을 하기로 한다.
금산사 남쪽의 개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길은 청룡사로 가는 길이고 왼쪽 길은 금동계곡과 눌연계곡을 통해 정상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왼쪽길 정면엔 부도전이 보인다. 이 부도전에는 헤덕왕사탑비(보물24호)가 있다. 이 갈림길에서 모악산을 바라보면 정면의 거대한 왕릉처럼 둥그런 송림의 언덕 뒤로 송신소 안테나가 선 정상이 우뚝하고 왼쪽으로보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청룡사길의 초입엔 과수원이 있다. 송림의 언덕길로 올라가면 이 능선봉에 이른다. 큰 길을 따라 들어가서 올라가면 배재가 된다. 송림길은 한동안 계속되다가 주능선에 닿기전엔 활엽수림의 급경사길이다. 좌우간 청룡사 갈림길에서 본 눌연계곡은 송림의 언덕위로 깊이 감돌아가고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도 우람해보인다. 개울가 수양버들 잎이 파르스럼해보인다. 부도전 아래 밭에 몇 그루 보이는 산수유나무에 꽃이 피었다. 2001년 들어 산야에 피어있는 꽃으로는 처음 보는 꽃이다.
송림속으로 들어가서 올라가는 길은 밋밋한 경사를 보이는 능선길이라 산행하기에 좋다. 이 능선길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다닌 것 같지 않다. 이 능선으로 올라가기로 한 것은 모악산의 산세를 점검해보기 위해서였다. 내려가는 길은 금동계곡으로 결정한 터라 올라갈 때부터 계곡(눌연계곡)으로 올라가는 것은 산행이 단조로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올라가는 능선은 꽤 길어서 올라가는 데만 1시간 50분이 걸렸다. 올라가다가 점심을 먹어 시간이 더 늘어났다. 힘든 길은 아니었지만 날씨가 더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더운 바람이 불면 여름이나 다름없는 기온이 되다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으슬으슬한 한기가 몰려올 정도여서 목에다 스카프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가 된다. 하룻동안에 3계절의 기온이 실현되는 판이라 의복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지경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송림은 줄어들고 햇볕이 마른 낙엽위에 쏟아져 열기가 올라온다.
모악산의 암봉에서 서북으로 뻗어가는 꽤 길고 높이도 700m대를 유지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배재옆 능선에서 보기에는 장벽을 보는 것 같기도 하여 장쾌한 느낌을 준다. 위쪽 산사면은 활엽수림이어서 현재는 나목숲으로 일관되어 있지만 아래로 내려올수록 드문드문 송림도 보이곤 한다.

모악산은 어디에서 온 산줄기인가?

지도확대됨
전주는 서쪽인 김제와 북쪽인 봉동쪽에는 이렇다할 산이 없고 대개는 광활한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동쪽과 남쪽은 완연한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시작, 장안산, 성수산, 마이산을 거친 호남정맥이 전주 동쪽과 남쪽까지 치고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전주 동남쪽의 만덕산(762m 진안군과 완주군 경계에 위치)은 전주시계와 겨우 직선거리로 4.4km 떨어져 있을 뿐이다. 또하나 호남정맥의 주요산인 남쪽의 경각산(660m 임실군과 완주군 경계에 위치)은 이 보다 더 가까이 전주에 접근 겨우 3.9km정도가 떨어져 있을 뿐이다. 전주 경계에 까지 올라왔던 호남정맥은 모악산 정상에서 구이저수지 쪽을 보면 길게 산록을 타고 올라가는 산복도로가 불재고개를 넘어 임실군 신덕면으로 빠지는 것이 보이는데 이 고개에서부터 남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러니까 구이저수지 뒤로 보이는 산이 바로 호남정맥의 주요산인 경각산인 것이다. 임실군과 완주군의 군계를 이루며 일로 남하하던 호남정맥은 섬진강 상류의 큰 댐의 저수지인 옥정호(운암호)를 내려다 보며 남으로 향하다가 묵방산(538m 완주군과 정읍시, 임실군 경계에 위치)에서 본맥은 다시 남하하고 한개의 산줄기를 북으로 밀어올린다. 묵방산에서 정읍시와 완주군의 경계를 이루면서 올라온 산줄기가 국사봉을 지나 밤티재에 오면서 비로소 모악산군이 되는 것이다. 모악산에서 호남평야를 내려다본 모악산은 북서쪽으로 산줄기를 더 뻗치다가 평야지대에 가라앉는다.
금산사:


사진: 육각석탑과 대웅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소재.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된 절이다. 그 뒤 신라 혜공왕 2년 진표율사가 중창하여 법상종을 열고 미륵신앙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이곳에 유폐되었다고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고려문종 33년(1079) 혜덕왕사가 대사구, 봉천원, 광교원등을 설치하여 전성기를 누렸으며 조선조 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때에는 뇌묵, 처영스님등이 일천여 승병을 훈련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때 전성기때의 규모를 자랑하던 80여 동 전각과 산내 암자가 모두 소실되었다. 1961년 월주화상이 주지로 부임, 보제루, 일주문, 상서전, 종각, 종무소등을 건립하고 미륵전, 대장전, 하서전등을 중수하였다 1986년 원인모를 화재로 대적광전이 소실되었으나 더 큰 규모로 복원되었으며 국보 62호인 미륵전도 완전해체보수(1994년완성)되었고 금강문, 사천왕문, 나한전, 설법전, 적묵당 등도 새로 신축하여 이 지역 제일의 수도와 교화의 도량으로 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금산사 안내문에는 적혀 있다. 금산사는 넓은 터에 당우가 짜임새 있게 자리잡은 거찰로 미륵전은 목탑불전으로 진작부터 전통건축의 한 성과로 평가되어왔다. 국보인 미륵전을 비롯하여 보물급 유물이 많기로 이름난 절이 금산사이다.



마우스를 사진위에 -->일주문 -->금강문(click!!) -->미륵전

능선에 오르기전 급경사가 조금 있어서 진땀을 흘린다. 거리는 얼마 안됐지만 낙엽이 쌓여있어서 미끄러웠다. 능선길에는 산죽이 꽤 많아 여름철에는 상당히 거추장스러울 듯했다. 지능선이란 대개 높은 주능선에 연결되기 전에는 급경사를 이루는데 이곳 능선은 일단 자그마하지만 봉우리를 이루어 내리막길이 되면서 배재에서 이어져 온 능선과 연결된다. 그 주변일대는 산죽이 무성하였다. 능선에 올라서서 능선봉에 이르면 구이면의 긴 골짜기가 내려다 보인다. 작은 봉우리 두 개째에서 장근재를 사이에 두고 솟아있는 모악산의 너른 남향 산록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꼭대기가 정상 남쪽의 암봉이다. 안부인 장근재 부근은 낙엽송림이 무성한데다 눌연계곡쪽은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그리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라온다. 장근재에서는 모악정까지 360미터, 정상까지가 1.5km, 배재가 0.9km 이고 재의 해발높이는 650m이다.
장근재에서 밋밋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경사로는 별다른 급경사는 아니다. 하지만 등뒤로 내려쬐는 햇살을 막아줄 활엽수의 잎은 남김없이 떨어지고 없어서 여름옷을 준비해야만 모악산의 남서향산록을 오를 수 있겠구나 싶을 정도다. 나중에 들은 날씨정보에 의하면 벌써 이곳 전북지방의 낮기온이 20도안팎에 이르렀다고 한다. 엊그제 눈보라가 날리던 생각을 하면 격세지감이 있는데...암봉 남록은 진달래나무가 꽤 많다. 정상이 보이는 능선턱에 오르니 암봉으로 보이던 정상은 서북쪽 산록이 몇 군데 단애를 이룬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암봉처럼 보이지만 암봉이 아니다. 억새가 적지 않은 바윗돌과 단애 부근에서 일대를 조망해보기로 한다. 단애쪽에서 나와 조금 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남쪽은 산줄기가 계속 이어져 능선봉 뒤로 사라지고 능선은 모악산에서 서북방향으로 바뀌어 김제만경평야를 향하여 가고 있다. 암봉의 조망은 황사가 극심한 오늘같은 날에는 운위할 겨를이 없어 안타깝다. 그러나 서쪽을 보면 금산사 서쪽 낮은 송림에 둘러쌓인 언덕 뒤로 가물가물 보이는 금평저수지가 보이고 산의 동쪽에 길게 누워있는 푸른 구이저수지를 내려다 보면 이 메마른 때에 만수에 가까운 저수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지 덕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겨울에 눈이 많이 왔던 것은 저수지의 수량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암봉과 정상 사이를 파고든 계곡은 상당히 길고 또렷하여 금동계곡과 함께 모악산 서쪽산록의 양대계곡을 형성한다. 지금은 나목들이 무성하지만 여름이 되면 이 긴 계곡에 활엽수가 무성하여 녹음을 이룰 것이므로 계곡행이 꽤나 시원하겠다. 이 계곡의 오른쪽 능선인 장근재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개울이 그쪽으로 바싹 다가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이계곡은 길게, 활등처럼 오른쪽으로 휘어지면서 하나의 정점을 이룬 금산사평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위에서 말한 계곡사이에는 작은 지능선이 두개 있는데 그 사이로 빠져나가는 골짜기들이 금산사 위에서 만나는 것이 선명히 보인다.
이 계곡으로 올라가지 않은 것은 나중에 금동계곡을 보기로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계곡 중간까지 나있을 것으로 보이는 큰길(심원암이나 정상의 보급물자를 실어나르는 케이블카의 시발점까지는 길이 이어져있을 것이다)때문이긴 했다. 그 산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하는 것은 그 산에 인공물이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개발의 때를 덜 탔느냐의 정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최단시간안에 정상으로 올라야 할 이유도 길도 필요 없었다.
모악산은 호남의 명산이지만 정상의 경관만은 아쉬움이 많다. 많은 우리나라 산이 그런 것처럼 높다는 사실 때문에 송신소위치로서는 호조건이 돼버린 것이 그것이다. 군사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아니 그런 목적이라도해도 이제는 산의 경관을 우선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산을 우리생활의 일부로 생각해왔고 산을 신성시했다. 모악산의 경우는 정상이 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거기에다 종래의 산의 개념과 사상에 너무나 어긋나는 시설물이 들어서 있어 아쉬움이 컸다. 모악산 장군봉은 그 이름에 걸맞게 당당했을 모습을 지금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아 더욱 그런 기분이 든다. 특히 서북쪽 급경사길로 내려가면서 보니 정상의 빼어난 모습이 금방 눈앞에 그려진다. 그 상상의 정상엔 물론 송신소 안테나 같은 괴물도 없고 황사도 없는 갈매빛 짙푸른 하늘 위로 우뚝 솟은(모악산정상은 문필봉이라는 이름의 산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끝이 비교적 예각적으로 생겼다) 울창한 숲에 쌓인 그림같은 정상봉의 장엄한 모습만이 있었다.
암봉에서 능선을 따라가다가 시설물지대를 끼고 눌연계곡쪽 산사면을 횡단하면 서북능선으로 내려설 수 있다. 서북쪽 사면의 길은 유난히 길이 또렷하여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전주시내의 서쪽구역에 해당되는 완산구 중인동으로 들어와 금선암 근처에서 세 가닥으로 나뉘는 산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오는 코스를 전주산꾼들이 주로 이용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정상까지 왔다가 되돌아가는 길 또한 중인동 코스중 가장 남쪽인 능선길을 따라 천황사로 내려선 뒤 계곡으로 빠질 경우 어느 정도 원점회귀산행이 되기 때문에 이쪽 길이 유난히 신작로 같아 보일 정도로 넓어진 것 같다. 즉 완주군 구이면으로 들어와 선녀폭포에서 전주김씨시조묘를 거쳐 능선에 오른뒤 능선산행을 계속한 뒤 암봉에 이르고 그 다음 정상에서 동북쪽 능선인 무제봉으로 내려서서 수왕사 대원사를 거치는 코스보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이 능선은 길이 넓고 거의 황폐화되어 길의 확대와 황폐화에 따른 세굴현상을 막으려면 울타리라도 세워야 할 정도임을 알 수 있다. 벌거벗은 능선에서 도저히 자연의 제모습을 연상해낼 수가 없다. 공터를 지나 가면 눌연계곡쪽으로 빠지는 지능선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 또한 몹시 닳아빠져 있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 이번에는 금동계곡과 눌연계곡 사이의 긴 능선길이 나온다. 이 길을 지나면 금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과연 나올까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능선 양쪽은 송림이 울창해지고 특히 서쪽 사면은 깊은 숲으로 뒤덮여 있는데다가 이따끔 숲사이로 보이는 다음 능선(모악산 서쪽의 가장 긴 능선으로 금산사를 북쪽 안고 있는 능선)의 깃점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금동계곡의 지붕을 형성하는 용마루가 꽤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간해서 내리막길이 나오지 않으므로 조급증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조그마한 길 흔적이라도 지나치지 않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걷는데 자그마한 지능선이 하나 지나고 금동계곡 쪽으로 내려서는 제법 또렷한 지능선이 느껴진다. 이 능선의 깃점은 또렷하지 않고 두리뭉실하여 길찾기가 쉽지는 않고 능선사면엔 송림이 울창하여 처음엔 송림속에서 쉬어가려는 사람들이 낸 길인가 싶었지만(솔가리가 푹신하게 깔린 송림속은 여름철엔 앉아서 쉬어가기 안성마춤이었다) 밋밋한 산길을 내려가니 길이 점점 또렷해진다.

금동계곡

이제부터는 모악산에 와서 가장 감동한 숲과 계곡 코스에 대한 설명을 하려한다.
주능선에서 내려서는 지점부터 계곡바닥을 딛기 까지는 한 30분쯤 걸렸는데 이 지능선길은 꽤 오래 송림이 계속되었다. 물론 능선형 송림이다. 나중에 나오는 계곡바닥의 송림에 비해 능선의 송림은 대체로 죽죽 뻗어 하늘을 찌르지 못하고 줄기가 휘어지거나 가지들이 옆으로 길게 뻗어나간 그런 소나무들이 많은 송림이다. 능선길을 내려가면서 정상쪽을 되돌아보니 어느 새 송신소 안테나 끝만 보이는데 이미 서북능선(모악산)의 황량하던 기억은 멀리 사라지고 능선사면에서 계곡상단의 산록은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어서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남쪽으로 급경사와 뚜렷하지는 않으나 단애가 더러 보여 소나무 그늘아래로 남쪽계곡을 내려다 보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눈을 더욱 싱그럽게 한다. 숲 사이가 틔었을 때 얼핏 보이는 골짜기의 규모로 보아 금동계곡은 꽤나 길어보인다. 금동계곡의 끝은 잘 보이지 않으나 좌우능선의 흐름을 보면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도대체 거친 구석이 없는 밋밋한 능선이 칼로 싹둑 자른 파처럼 팍 끊길 리는 없는 것이다. 그만큼 긴 것이 금동계곡이었다.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정신없이 읽어야 할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 한권 더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또 마치 예금이 두둑한 통장을 손에 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계곡이 없었더라면 모악산의 전체적인 인상은 산행 첫부분의 울창한 송림길이나 배재 좌측 까지의 그런대로 소박한 능선길에도 불구하고 황량하고 썰렁한 쪽에 가까웠던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더구나 중간에 제법 큰 와폭이 하나 나오고 와폭이 시작되는 곳엔 금수산 용추폭포 위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눈썹소를 연상케 하는 자그마한 소도 하나 있고 와폭으로는 드물게 바위사이로 홈을 파고 물길이 나서 그리로 검룡소를 빠져나가던 대덕산 골짜기의물처럼 폭류를 형성하며 흘러내려가서 제법 넓은 소로 빠져나가는 것이 상당히 아름다웠다.
능선이 끝나고 길은 우측 계곡바닥으로 내려선다. 이끼가 낀 바위사이로 물이 나오는 계곡의 상부이다. 물한잔을 마시고 병에도 반쯤 담았다. 이곳은 평평한 분지를 이루고 있고 곳곳에 거목 침엽수가 서 있어서 그 아래로 들어갈 때는 제법 숲그늘이 짙어진다. 널부러진 석탑부재가 보이기도 하고 집이 들어앉았던 축대같은 것도 보이는 것 같다. 금산사가 전성기를 누릴 때 금산사는 80동의 당우가 즐비했다고 하고 부근 골짜기 일대에는 수십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유재란(임진란)때 모두 불탔다고 하니 이 유허도 그때 불탄 암자 자리일 것이 분명하다. 이곳을 내려가면 경사가 조금 급해지는데 이부분은 규모가 큰 돌과 바위가 밭을 이루고 있고 상당히 넓은 계곡을 채우고 있는 나무도 덩굴류가 많고 또 습기찬 계곡에 적합한 나무들이 빽빽하여 특이한 식생을 보인다.
숲사이로 내려다 보면 수량이 꽤 많이 불어나서 곳곳에 작은 소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조금 더 내려가면서 키가 큰 울창한 송림이 나온다. 주변은 평탄하고 숲도 울창하여 걸어가기가 신이 난다. 송림은 아까 말한 능선형 송림이 아니라 계곡형 송림으로 곧게 죽죽 하늘을 찌르듯 솟아있는 잘 큰 소나무들이다. 송림에서는 피톤치드라는 물질이 수피로부터 배어나와 솔가리가 수북히 쌓인 보료부근엔 여름이 되어도 잡충이 없다. 이 물질의 효능중의 하나에 살균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물질이 굳이 아니더라도 그리고 텔레핀유의 향긋한 냄새가 없고 송림이 사람에게 주는 온갖 종류의 혜택을 차치하고라도 호젓한 골짜기 그것도 평탄하기만한 계곡바닥에 소복히 쌓인 솔가리를 밟으며 수량많은 제법 넓은 개울의 물소리를 벗하면서 산길을 걸어 내려간다는 것처럼 상쾌한 경험은 없을 것이다. 숲의 꼭대기 위로 조금 멀리 바람이라도 불어가는 소리가 나면 기분은 더욱 상쾌해지게 마련이다. 금동계곡은 능선바로 아래의 급경사를 빼면 이렇다할 경사가 없는 평탄한 산길이어서 사람의 심신이 자연의 오묘한 실내에 들어온 듯 평온해진다. 정상부근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마치 시끄러운 헤비 메탈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온갖 소음(실제로 소음이 그렇게 많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에 시달린 듯 피로해진 신경(요즘은 야호소리도 마냥 시끄럽게만 들린다)은 이곳 잔잔한 물소리가 얘기하듯 조잘거려주고 귓속까지 씻어주는듯한 송림길에서는 마치 은은한 실내악이 잔잔히 흐르는 장소를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금동계곡을 통과하는 데는 적어도 1시간 이상은 걸리는 것 같다.
금산사가 가까워지면서 길이 계곡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아무래도 금산사 뒤쪽 얕은 능선을 넘어가게 돼 있는 모양이다. 아침에는 무턱대고 계곡입구에서부터 들어가려고 길을 찾았으나 그쪽에는 길이 없었다. 대밭옆에 쪽문이 하나 있었지만 그문은 개울 건너편에 있는 암자로 가는 문이었다. 게다가 보살님 한분이 손을 저어 빨리 나가달라고 한다. 스님한분이 안거에라도 들어간 것인지 속인의 발걸음이 영 켕기는 모양이다. 금동계곡을 빠져나오는 길이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금산사위쪽 부도전 위에서 합류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 이외의 느낌을 준다. 계곡입구가 훼손되기 쉬운데다가 금산사가 바로 계곡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계곡을 개방시켜 놓으면 여러가지로 시끄러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 현명한 길유도라는 생각이 든다. 금산사뒤 울창한 송림언덕을 넘어가기 전 금동계곡 바닥은 풀밭이 넓게 퍼져 있고 개울은 보이지 않았는데 미류나무가 나목인 채로 하얗게 서 있고 건너편 산록에는 송림과 나목숲이 있는 황량한 경관이었고 황사마저 끼여 부연 하늘이건만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이 무언지 적당히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거기에 물기 오른 봄날 오후가 있었다"고나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까. 미류나무가 하얀것이, 소나무가지가 너무도 푸르른 것이, 그리고 환한 오후의 양광이 비치고 있는 계곡바닥이 너무도 포근해 보여 잠든 아기조차 깨울 것 같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고 할까. 언덕을 넘어 내려오면서 송림속을 보니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곳곳에 싱싱한 참대가 죽죽 하늘을 찌르며 소나무와 키 경쟁을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 왕대나무 줄기는 거죽이 유난히 푸르게 번들거렸다. 소나무밭에 대나무라니. 송죽이 원래 오우(다섯친구)에 속하는데 서로 만나 각별한 대화라도 나누고 있는 것일까. 큰길에 내려오자 부도전이 나오고 혜덕왕사 진응탑비(보물)를 보고 나오는 길가 사전(절밭)에 산수유가 두어그루가 곱게 피어있는 것이 보인다. 아직 만개는 아니지만 금년에 처음 만나는 산수유 꽃이다. 산행시간 5시간 30분 정도. 금동계곡의 중간쯤에 내려오니 오른쪽 능선에서 내려오는 제법 큰 길을 만났다. 중인동코스에서 능선에 오른 뒤 금동계곡의 좌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