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갑산 1285m

인적 드문 심설의 능선

2월 중순에 강원도 정선에 있는 산을 당일산행하기로 목표로 정했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는 교통문제다. 승용차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보통 영동고속 도로를 이용, 남원주에서 신림-주천-평창-정선코스로 정선으로 오 는데 그러자면 멧둔재나 비행기재는 물론이고 높고 낮은 많은 재 를 넘어야 하는데 게중엔 틀림없이 한 두 곳은 결빙되어 있을 것 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한다고 해도 하진부에서 정선으로 오는 길에는 응달도 많으므로 결빙지역 이 있을 가능성은 있으며 겨울의 영동고속도로가 승용차에 언제나 편리한 도로가 될 수가 없음을 우리는 누누이 본다.
기차를 이용 하려면 전날밤 10시차를 타야 하는데 목표역인 여량역이나 구절리 역에는 새벽 1시와 2시사이에 도달하므로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려 면 민박이나 여관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2월 15일 전후해서 날씨가 포근해져 낮기온이 10도를 넘는 것을 보고 승용차로 가기로 하는데 거기에는 옥갑산 바로 산밑으로 난 도로(42번)로 목표산에 바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여량에 서는 약 2킬로정도를 걸어야 차를 3대정도 주차시킬 수 있는 옥갑 사아래 계곡입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
옥갑산은 강원도 정선군 북면과 북평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정선에서 20킬로정도 되는 곳에 있는 옥갑사계곡아래 도로변의 산입구에 있다. 이곳은 옥갑산 산발치가 조양강 푸른 물줄기를 U턴시키는 정점이다. 이곳에서 하옥갑사옆 능선-상옥갑사-옥갑산정상-상원산정상-하자개마을-송천으로 내려오는 코스와 이 코스를 역으로 하여 산행을 할 수 있는 노추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 구절리에서 송천과 합류되는 봉산천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나오는 하자개마을에서 상원산으로 올라가 능선을 따라 옥갑산으로 나온 다음 옥갑사(상)로 내려와 조양강가 42번도로로 내려오면 되는 코스가 있다.
옥갑사코스는 좁은 골짜기로 들어가 큰 길이 나오면 왼쪽 능선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이 능선좌우로 작은 골짜기가 나뉘는데 오른쪽 계곡가에는 낮은 곳에 하옥갑사가, 왼쪽 골짜기의 상단 높은 곳에 테라스가 형성되고 테라스위에 상옥갑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 능선을 조금 만 올라가도 조망이 툭 트이며 여량과 아우라지 나루터, 여량 뒤 쪽의 고암산-상정바위능선이 아스라히 바라다보인다. 눈을 끄는 경관은 활등모양으로 휘돌아가며 푸르게 흐르는 조양강과 강변의 송림이다. 동해안으로 갈 일이 있으면 대부분 정선을 거쳐 동해시 로 가는 것이 버릇처럼 된 것은 이곳 조양강가의 푸른 격류와 소, 그리고 송림이 청류위에 그윽한 숲그늘을 드리우고 옥갑산 산영이 맑게 어리는 태고적 경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이다. 강은 아우라지를 지나 임계면 골짜기로 들어가고 그 뒤로는 멀리 중봉산에서 시작되는 청옥산군이 보인다. 능선은 급경사이므 로 단체산행을 할 경우 돌멩이가 구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하옥갑사가 보인다. 소나무가 줄을 이어 서 있는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큰 길이 나온다. 송천골짜기에서 동쪽 산록에 있는 옥동광산으로 연결된 광산도로가 연장되어 상옥 갑사와 연결된 도로로 짐작되었다.
도로를 따라 평탄한 길로 능선을 횡단하면 테라스위에 자리잡고 있는 상옥갑사가 나타난다. 높은 대위에 자리잡은 상옥갑사는 유 래가 깊은 절로 보이지는 않으나 위치만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급경사로 인해 조 양강 푸른 물은 마치 절간 지주석 아래를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 다. 42번도로의 높이가 해발 200미터라면 상옥갑사는 어림잡아 해 발 약 1000미터 정도 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고 짐작이 된다. 상옥갑사에서 바라다 보이는 골짜기 사이의 조양강은 겨울 풍경인 채 황량하기만 한 두 능선 사이에 끼여 푸른 비취처럼 선명하게 빛난다. 옥갑산 아래발치를 U자를 그리며 흘러가는 유로 옆으로 소나무숲이 펼쳐진 이곳에서 언제 여유를 갖고 자연을 감상하게 될까하던 희망이 이제야 풀리게 된 것이다.
정선땅은 우리나라의 오지에 해당한다. 그래서 계곡은 깊고 산은 높다. 높은 산은 태백 산맥의 높이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인데 계류와 개울이 파들어가는 깊이는 점점 내려가기 때문이다. 옥갑사에서 조양강을 내려다보면 길가에 이렇게 높은 산이 우뚝 서 있다는 게 실감이 안날 정도이 다. 여량을 싸고 돌아가는 물길이 U자를 그리며 깊숙이 돌아가는 곳은 옥갑산의 협착하면서도 경사가 급한 계곡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좁은 계곡을 올라가면 제법 널찍한 길이 나오는데 길을 따 라 가기 보다는 왼쪽 능선(대단히 급하다)으로 계속 올라가기로 한다. 정상으로 생각되는 봉우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상옥갑사위로 비스듬히 하늘을 향하여 뻗어 올라가는 능선엔 하얀 설화가 피어 그 아래부분과 완전히 구분되고 있었다. 평지는 거의 영상 5도 가까운 포근한 기온이었지만 봉우리를 감돌던 운무가 벗겨지고 나 니 거기에는 겨울풍경의 백미인 설화가 온통 옥의 갑옷을 입힌 듯 희게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산의 저층 부를 오르는 사람은 정상부근의 신성하다고 할 정도로 흰빛으로 감싸고 있는 설화의 숲을 멀리 보면서 걸음을 재촉할 때 그의 뇌 리를 파고 드는 생각은 그 하얀 설화의 숲에 빨리 가고 싶은 원망 밖에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옥갑산을 찾은 것은 2월이 가기전에 심설산행을 한번 결행해야 겠다는 의지때문이었지만 철도로 가기에는 아무래도 접근거리가 길듯하여 승용차로 온 것인데 2월 중순에 우리나라의 오지인 정선을 승용차로 간다는 것은 모험이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침에 필 자의 집이 있는 용인 수지읍을 떠날 때만 해도 자신이 서지 않았 다. 이른 아침을 피해 출발한 것도 순전히 그때문이었다. 상옥갑사에서 물맛좋은 약수를 마시고 새로 지은 산신각인 듯한 건물 뒤로 난 산길로 오르기 시작한 것은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이 넘었을 때였다. 사람 좋아보이는 보살님이 공양이라도 들었는 지 물어주는 데에 조금 감격하다가 갈길을 재촉했지만 시간이 자 꾸 지나가고(중도에서 점심을 먹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 것이 다)있어서 지체하기가 어려웠는데 절 경내를 빠져나오자 말자 러 셀을 하지않아 길도 보이지 않는 능선에서 다리가 푹푹 빠진다. 길을 짐작하기도 어렵고 한발자국만 옮겨도 무릎까지는 간단히 빠 진다. 길이 보이지 않으므로 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 것은 시간과 위험을 의미했다. 두 서너번 깊은 곳에 빠지고 나면 힘은 없어지고 시간은 더욱 빨리 지나간다. 반 너덜지대로 들어서면서 다행히 계곡사면보다는 적설량이 적어 올라가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마루턱에 올라서니 골짜기 아래 서 바라보면 동화속 나라같던 설화의 숲과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 고 선다. 마루능선을 지나면 급경사길이다. 적설량은 적지만 길은 참기름 바른 방바닥처럼 미끄러워 나무를 붙들고 올라가는데 적지 않은 고생을 한다. 다음날 상체 곳곳의 힘줄이 댕기는 것을 보고 얼마나 용을 썼으면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사 이로 오후의 햇살이 비치면 설화가 우수수 떨어져 적설위에 설화 가 쌓이곤 했는데 그 위에 비치는 햇살은 영롱한 눈꽃위에서 확산 되었다. 소나무는 가장 작은 솔잎에도 솜과자처럼 빙설에 둘러쌓 여 단아한 겨울 풍정을 야기시킨다. 20미터를 올라가는데 4,5분간 안간힘을 써야 할 판이다. 시간은 자꾸 지나갔다. 3시가 가까워지 고 있었다. 평탄한 능선으로 올라서는 마루턱까지는 30미터 정도 만 더 오르면 될 듯했다. 그때 카메라의 배터리가 떨어졌다. 설화 의 숲은 가경을 연출했고 숲속의 모든 가지와 모든 바위마저 운무 가 머물다 가며 설화를 덮어씌운 흔적을 남기고 있어 설국의 풍정 이 온 산에 가득했지만 눈으로 범벅이 된 배낭은 저 아래 어느 나 무아래 벗어놓고 올라왔던 것이다. 충전된 배터리가 벗어놓은 배 낭안에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옥갑산봉으로 올라간다고 하더 라도 이미 당일 산행은 무리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었다. 옥갑산에 서 상원산까지의 능선은 어느 산행 지도에 의하면 "동계등반 훈련장으로 적당하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임을 고려하면 아마 적설량이 대단할 것으로 보이는데 상원산 까지는 적어도 3시간은 잡아야 도착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아이젠을 차에 두고 온 것 도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산행의 절반도 안되는 과정밖에 소화하지 못한 터에 산행기를 더 쓰기가 쑥스럽지만 그나마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래도 거기엔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정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느꼈기 때문이 다. 이날은 날씨가 포근하여 돌아오는 길도 순조로왔지만 멧둔재 이후의 어느 고개는 어두워지면서 길이 얼어 조금 미끄러웠지만 우려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옥갑산산행을 위하여 두번째 시도한 정선행은 2월 22일 일요일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사이 비가 한번 왔고 눈도 한번 온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용인에서 정선까지 오는 동안 길바닥과 길가의 산야에 눈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였다. 일주일만에 이럴 수가 있는가? 겨울이 완전히 가고 포근한 아침 햇빛으로 환한 산야에는 이미 초봄이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할 정도의 봄날 아침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해맑은 대기가 고여 있었다. 멧둔재도 비행기재도, 멀리 가리왕산이 보이는 광하교 부근 재(이름을 모른다)에도 눈은 없었다. 가리왕산에도 눈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 비로 옥갑산 눈도 다 녹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눈녹은 물이 격류를 이루며 흐르는 조양강물은 투명하긴 해도 지난번같이 맑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우라지로 가는 길목에서 뒤돌아본 옥갑산은 지난번 보다는 설화선(line)이 꽤 올라가기는 해도 정상1100미터정도높이 위쪽으로는 하얀 설화가 핀 높은 등걸을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희게 빛내고 있었다.
오늘은 능선을 올라가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단축해보기로 한다. 12시를 조금 지나 출발했다. 코스는 상옥갑사 아래 큰길까지는 지난 번과 같고 그 위쪽으로는 상 옥갑사뒤쪽 능선으로 정상쪽으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상원산을 올랐다가 구절리로 내려올 수 있을 것이다. 눈은 오히려 산길 아래쪽에 조금 깔려 있었는데 이 눈은 지난주 산행때는 없던 눈이었다. 새로온 눈이었다. 지난번 산행기에서는 능선에 소나무가 띄엄띄엄 있다고 썼는데 오늘 산행때 보니 노송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상옥갑사뒤를 받치는 능선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은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20분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능선은 경사가 급산 쇄석 암릉이 단속적으로 나오는 까다로운 능선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능선을 타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상옥갑사의 높이를 지날 때쯤서부터 바위에 얼음이 뒤덮이거나 적설량이 깊어져 주의해야 했다. 적절한 코스를 찾아내느라 바위벼랑아래에서 이리갔다 저리 갔다 하기도 하면서 바위를 올라가는데 자꾸만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갑자기 오도가도 못하는 벼랑끝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닌가하고 말이다.
고개를 꺾어 올려다 보면 온몸이 비틀린 노송들이 높이 솟은 벼랑위에 서 있고 그리로 올라가면 전망은 좋을지 모르지만 군데군데 얼음이 깔린 석면이 음습한 그늘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어서 주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장비를 갖고 있을리가 없었다. 옥갑산 능선에서 내가 보려고 한 것은 설화와 심설 그리고 봄이 오기 직전의 능선의 한적한 모습과 될 수만 있다면 노추산이나, 청옥산, 두타산을 조망해 보는 것이다.
소백산 능선에서 보지 못한 설화, 그리고 인적드문 대낮의 고요한 설릉, 그런 것을 경험하고 싶었을 뿐이다. 미끄러운 바위, 거친 암릉은 예상에 없던 요소들이었다.
이 능선에서 두 시간 남짓 안간힘을 쓰는 동안 귀중한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30-40분 지난 뒤 조금 평탄한 쇄석지대 양지쪽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옆에 서 있는 노송위의 눈덩어리가 포근한 기온에 녹아 우루루 떨어져 내리곤 한다. 다시 오르기로 한 급경사는 지금까지의 암릉경사보다 더 급하고 더 협착한데다 눈도 많아졌다. 어찌어찌 길을 찾아 바위와 바위사이로 넘어가니 그곳엔 완전한 설화의 숲에다 냉기까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그런 응달이 나온다. 겨우내 눈이건 얼음이건 녹은 일이 없는 그런 설사면에다 심설의 계곡이었다. 발이 무릎까지 빠지기 시작하는 깊은 눈은 표면이 엊그제 비로 거칠하게 얼어있어 요행 발이 빠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빠졌다. 아이젠을 하고 오버트로저를 입고 올라가는데 차라리 바위보다는 올라가기가 나았다. 구덩이에 빠질 염려는 몰라도 얼음에 미끄러져 다칠 염려는 없기 때문이었다. 시간만 있으면 촬영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동쪽 응달이라 북동풍이 몰아치기 십상인 이곳에 유난히 깊은 겨울이 숨쉬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4시간이 지난 뒤 하늘이외엔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능선이 보인다. 상당히 지쳐 있을 때였다. 깊은 눈에 빠지면 기운이 쪽 빠지곤 했지만 암릉 아래를 횡단 작은 능선을 오르면서 경사가 완만해진다. 그러자 서쪽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가리왕산 능선이 나타난다. 드디어 옥갑산능선에 도착한 것이었다.

왼쪽으로 지난번 산행 때 올라가려다 40여미터를 남겨두고 패퇴해야 했던 전위봉이 낮게 보인다. 그 봉우리보다 어느새 높은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조망이 좋은 곳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멀리 두타산-청옥산 능선과 봉우리가 보인다. 주위의 군소봉우리보다 훨씬 높은 봉우리로 백설을 이고 있는 모습이 장엄해 보인다. 설화들은 오후의 포근한 햇살에 칼날같은 설편을 심설위에 뿌린다. 퍽퍽 떨어지는 설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처량한 느낌이 든다. 설화사이로 보이는 조양강과 아우라지 나루터풍경은 아스라히 낮은 대지를 푸르게 구획하는 멋진 풍경이다. 능선위의 심설은 아무도 횡단한 자국이 없다. 따라서 길이 있을 리가 없다. 상원산은 지호지간이다. 2킬로 정도밖에 안돼 보인다.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었다. 러셀이 되지 않은 심설능선을 횡단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상원산까지 가는데만도 1시간 이상이 걸릴듯했다. 깊은 눈을 생각하면 1시간도 짧게 잡은 시간일 터였다. 정상쪽으로 조금 나아가다가 조망이 좋은 또 하나의 전망처에서 촬영을 한다. - 이 동영상은 매혹적인 영상이 될 것이 확실했다- . 내가 본 것을 모두 이야기한다 해도 카메라가 몇 초 촬영한 것에도 견줄 수가 없을 듯하다. 노추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경관을 배경으로 주위엔 설화와 성에로 뒤덮인 노송한 그루가 겨울이 끝나가는 한 오후를 차겁게 얼어 이제는 겨울이 몸서리친다는 듯 떨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상원산 능선은 나를 손짓하듯 한다. 금년 겨울산행중 최고의 전망을 카메라에 담느라 시간은 더욱 흘렀다. 전위봉까지 나오는데 애를 먹는다. 발이 푹푹 빠지는 심설속의 고행. 드디어 전위봉에 와서 조양강기슭까지 이어지는 긴 능선길로 하산을 시작한다. 7시에 차에 도착. 마지막 10분간은 컴컴한 어둠속 산행이었다. 이따금 한대씩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외엔 밤하늘의 쏟아지듯하는 별빛과, 조양강의 격류소리외엔 아무빛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7시간 산행의 고행의 나른한 감미로움속에 심한 피로가 밀려온다.


1998.2.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