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뢰산 612m
위치:충북 진천군 진천읍 - 충남 천안시 병천면
교통편:진천읍-김유신생가(시내버스운행)
문화재와 볼거리:김유신생가, 보탑사 목탑불전, 만뢰산성, 백비
보탑사와 김유신생가
코스:보탑사 -백비 -능선 -정상
산행:

사진: 보탑사 목탑불전

만뢰산은 충북 진천군 진천읍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612미터에 지나지 않은데 이높이는 강원도에서는 맥을 못추는 높이일지 몰라도 사방에 특별히 높은 산이 없는 충청북도 진천지방에서는 최고봉으로 대접받는 산봉우리이다. 만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모두 길고 능선과 능선사이에 형성된 골짜기는 깊다.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지는 칠현산에서 남으로 서운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에서 가지쳐 나온 능선은 만뢰산, 태령산을 거쳐 동남으로 뻗어 오창부근의 넓은 평야지대에 이르기까지 높은 능선을 유지한다. 이 능선이 충청북도의 서쪽과 충청남도 동쪽의 도계를 이루고 있는데 신라때 김유신장군이 태어나던 무렵에는 신라와 백제가 패권을 다투던 중요한 전선( 戰線)이기도 했다. 그 증거가 만뢰산성으로 남아있다.
이 성은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이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산성이다. 만뢰산(일명 만노산)은 낮은 산높이에 비해 능선이 유난히 복잡한 것이 커다란 특징이다. 지능선에서 다시 가지 쳐 나간 능선도 복잡하게 형성되고 아주 짧은 능선도 중간에 뭉툭하게 능선봉이 솟아오르거나 하여 변화가 무쌍한 산형을 보인다. 그런데 만뢰산 정상에 가면 이러한 능선들이 또렷하게 정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정상과 주능선에 나아가기는(지키기는) 용이하고 물러나면 사방으로 흩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적이 전선을 돌파하더라도 적절한 매복전략을 구사한다면 적의 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을 듯이 보인다. 이것은 그저 해본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신라군이 북서전선을 철벽화하여 칠현산부근 한남금북정맥의 저지대(현재의 안성군 죽산면의 안성컨트리 클럽 입구 부근인 걸미고개)를 넘어 한강 남쪽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삼국사기 열전 제1편 "김유신"전을 보면 유신의 부친 서현은 할아버지인 무력의 눈부신 전과와 무공에 이어 소판 대량주도독 안무주제군사에 이르렀을 정도로 성공한 무장이었다. 이 서현이 김유신의 어머니인 만명부인을 만나 결혼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만뢰산과 보탑사관광지도(확대됨)

"처음 서현이 갈문왕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을 보았을 때 내심으로 기뻐하여 그녀에게 눈짓하여 중매도 없이 야합하였다. 서현이 만노군(현재의 진천군) 태수가 되었을 때 만명과 함께 가려하니 숙흘종이 비로소 딸이 서현과 야합한 사실을 알고 그녀를 미워하여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두어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대문에 벼락이 쳐서 지키던 사람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만명이 창문으로 나와 마침내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이렇게 김유신은 지금 만뢰산 기슭에 있는 생가(사진:참조)에서 아버지 서현과 어머니 만명부인 사이에 태어났다. 이때가 진평왕 건복 17년이었다.
다시 삼국사기를 보자. 그가 태어날 때의 태몽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서현은 경진일 밤에 화성과 토성 두 별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꿈을 꾸었고 만명도 역시 신축일 밤에 동자가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잉태하여 스무달만에 유신을 낳았다. 김유신의 이름을 유신이라고 한 것은 서현이 경진일 밤에 태몽을 꾸어 유신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서현은 날짜로 이름을 지을 수 없다고 하고 경진의 경(庚)자와 자형이 비슷한 유(庾)자와 진(辰)자와 비슷한 신(信)자로 이름을 지어 유신이라고 하였다. "
이러한 내력을 가진 만뢰산이고 김유신 생가이니만큼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유신과 만뢰산, 태령산은 우리로 하여금 민족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삼국통일의 결과 고구려의 상실로 민족사에서 요동벌의 광막한 땅을 외부세력에 넘겨주고 말았다고 하여 삼국통일을 폄하하고 고구려사를 민족사의 정통으로 보는 시각과 분위기가 있으나 이것은 고구려의 상실에 따른 민족사의 한(恨)은 될 수 있을지언정 현실은 고구려가 자체의 힘으로 민족사의 맥을 잇지못하고 민족에게 한을 남겨주게 된 여러가지 역사적인 원인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고구려사회의 건전성의 문제와 적진앞에서의 분열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사불란한 규율과 국론에 바탕으로 하고 김유신과 같은 전략가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물론 전쟁에 패배하면 패배자는 그 원인으로 벼라별 수치스런 오욕을 뒤집어쓰게 마련이니 패배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김유신 생가와 보탑사로 들어가려면 진천읍에서 청주로 연결된 17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천안으로 가는 우측의 21번도로 접어들어 2km정도 가서 고개를 넘기전 우측으로 난 길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먼저 삼계리가 나오고 골짜기 깊숙이 들어가면 연곡리가 나온다. 이 계곡은 꽤 깊어 한참동안 들어가야 한다. 먼저 김유신 장군 생가가 우측으로 보인다. 생가가 장군이 탄생할 때의 집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보인다. 생가앞은 널찍한 초지가 조성되어있고 그의 통일 위업을 기려 오석에 명문을 새긴 대형 석비가 세워져 있고 비각안에는 구부와 이수가 뚜렷하고 비신에는신라 흥덕왕때 추존된 흥무대왕의 유허비라는 명문이 음각되어있다. 삼국사기에 수록된 것처럼 김유신의 탯줄은 생가 뒷산인 태령산에 묻혔는데 태령산이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유래되었다. 생가에서 태령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나 있다.
보탑사는 생가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 곧 이어 저수지가 나오고 저수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면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제법 넓게 트인 분지형 지형이 나온다. 정말 골짜기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어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게 시리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막힌 지형이다. 만뢰산 줄기의 능선을 업고 밋밋한 지형위에 보탑사는 위치하고 있다. 보탑사는 목탑형 불전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높은 불전건물이다. 우리나라의 목탑형 건물로는 쌍봉사와 법주사 팔상전 등을 들 수 있으나 사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이번에 신영훈 씨가 지은 보탑사 목탑불전은 사람이 올라갈 수 있게 지어졌다. 목수로서 역사서에 나오는 신라의 황룡사 구층탑을 재현해 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그는 목탑건축으로 후대에 남을 오늘의 절집을 마련했다. 이 목탑의 높이는 42.7m이다. 일층은 사방불을 안치했다. 석가여래,비로자나불,약사여래, 아미타여래다. 2층에는 가운데에 윤장대가 있고 그 안에는 대장경을 봉안했다.윤장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경서와 석경이 비치돼있다. 삼층은 남향한 미륵불을 모시고 있다.
보탑사의 목탑은 불전양식의 신기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통불사에 충실하여 오로지 목재로만 결구된 중층식 건물은 가로로 퍼진 대웅전식 불전에는 없는 장엄함과 웅장함 속에 함유된 경건함을 덤으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단청이며 기왓장의 색깔, 하늘을 찌르고 있는 보주의 형상도 하늘에 닿고 땅에 이르는 목탑의 외형적 완성도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만뢰산은 보탑사 뒷능선으로 올라서서 계곡 너머 솟아있는 산으로 U자형 능선을 제법 멀리 돌아올라가는 꽤 운치있는 산길을 갖고 있다. 보탑사에서 대충 2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 정상에는 물을 저장했던 웅덩이형 유허가 남아있고 성곽이 일부 보인다. 산행깃점은 보탑사 주차장에서 올라오면 보이는 백비전각(비석에 문자가 새겨지지 않아 백비라 부른다. 귀부와 이수가 또렷한 이 비석은 보물로 지정되어있다)옆으로 난 길을 따라 울창한 이깔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면 호젓한 산길이 나타난다. 20분쯤 올라가면 능선위에 올라설 수 있다. 능선의 숲사이로 북에 정좌한 만뢰산이 보인다. 일견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정상까지는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능선길에서 왼쪽능선을 따라 한참 서쪽으로 가면 길은 방향을 바꿔 북쪽으로 이어진다. 울창한 굴참나무 숲 속으로 난 길은 운치가 있고 숲사이로 서쪽에 해당되는 충남 천안시 병천면쪽 산록과 골짜기가 내려다 보인다. 안부를 지나 올라가면 만뢰산이 가까이 보이고 군데 군데 통나무로 만든 의자가 있어서 쉬어갈 수도 있다. 정상에 올라가면 사방이 틔어 광활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진천의 연곡리 여행은 절과 산, 그리고 삼국통일의 이룩한 김유신의 생가가 있어서 여가와 휴식, 적당한 운동, 종교적인 여운, 문화와 역사의 아취를 느껴보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사진: 만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