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산 750m

봄의 시가 준비되고 있는 산

1000미터 이상의 산으로만 다니다가 아내가 따라나서는 이번산행은 아무래도 높이가 적당한 산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니 가보지는 않았지만 손쉬울듯한 구절산이 퍼뜩 머리속에 떠올랐다.
구절산은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산이다. 춘천시 동산면과 홍천군 북방면 사이에 있는 구절산은 춘천-홍천가도 옆에 있어서 찾기가 편하다. 춘천에서 홍천으로 가는 길은 이제는 고속도로가 되어 원창터널을 지나가 버리지만 몇 년전만 하더라도 경사급한 도로를 따라 마냥 꼬부랑거리는 고개를 넘어야 했다.(지금 이 고속도로에서 구절산으로 들어가는 동리인 길가의 조양리로 내려설 수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춘천에서 구절산(750미터)으로 가는 길은 춘천-홍천 구도로로 들어서서 원창고개를 넘고, 골짜기와 낮은 산사이로 난 잘 포장된 길을 따라 한 30분만 가면 된다. 원창고개를 넘으면 수리봉과 연엽산으로 들어가는 협곡이 있는 쉰골길이 왼쪽으로 나타난다. 비포장길이다. 이곳 연엽산과 수리봉도 가족산행이 가능한 재미있는 산이다. 갈림길을 지나 아스팔트 길을 따라 홍천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팔봉산으로 빠지는 갈림길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조그만 더 내려가서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길가에 옹기종기 모인 조그마한 동네(조양리)가 나오고 작은 다리가 보이는데 다리를 건너가자말자 바로 집사이로 난 길로 좌회전하여 들어선다. 그러면 길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뀐다.

지도안의 춘천-홍천도로는 구도로임

개울을 따라 길을 가면 도화동이 나오고 멀찌감치 왼쪽편으로 솟은 연엽산이 보인다. 연엽산과 구절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 사이의 잘록한 안부가 새목현이다.
우리는 꿩사육장이 보이고 산불조심 플래카드가 나붙은 거의 막다른 길에서 차를 멈추고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골짜기가 작은데도 맑은 물이 그득히 흘러내려 오고 있는 개천에서 조금 올라가면 절(수도사)이 보이고 거기서부터 구절산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높이가 750미터라면 도봉산보다 높은 산이지만 도봉산의 험준함을 유추할 만한 산형은 비슷한 데도 없어 보인다. 거의 사전 지식이 없이 들어온데다가 아내가 동행이라 밋밋한 산이면 어떠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지의 해발고도가 약 250미 터정도는 되는 듯하다. 그러니까 500미터고도만 올라가면 되는 산인 셈이었다. 구절산은 분명히 오른쪽에 있을 듯한데 정상쪽이 보이지 않고 연엽산만 보였다.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는 계속 계곡 안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내려올 때 그길을 쓰자고 하면서. 조금 들어가니 짙푸른 잣나무숲이 다가온다. 이 송림속에서 이름없는 산에 온 섭섭함을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 워낙 식생환경이 좋아선지 잣나무는 싱싱하고 경사도 완만하여 산행하기는 좋았다. 이곳은 강원대학교 연습림이라 수목들이 싱싱해서 좋다. 4월초 길가 잣나무의 푸르름은 삼단같은 보릿줄기의 푸르름을 연상케 한다. 윤이 나는 것 같다. 싱그럽고 편안한 산길에서 걸어가는 산행의 즐거움이 문득문득 온몸을 쾌활한 기운으로 가득 채우는 듯하다. 송림속에서 몸을 상쾌하게 하는 요소는 피톤 치드라고 했던가.

사진 구절산단애

평지와 같은 평탄한 길옆으로 맑은 계류가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단애가 보이기 시작하고 절벽에는 진달래 몇 그루가 흐드러지게 피어 바위를 배경으로 빛나고 있다. 이곳의 바위는 이곳에서 가까운 편인 춘천시 입구의 삼악산의 바위처럼 모가 지게 날카롭게 쇠락한 바위들이다. 단애는 도봉산이나 광주산맥쪽의 모서리가 둥글둥글한 돔형 화강암이 아니고 판석을 포개놓은 것 같은 그런 바위들이 대부분이다. 한여름이 되어 앞길을 가로막을 덩굴류들이 개천가에 우거지기 전에 봄철에 이런 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다. 계류마저 잦은 비로 너무도 정갈하여 이따금 허리를 굽히고 사슴처럼 물을 마시고 싶어진다. 계곡을 훑어오는 바람소리로 이따금 맑은 물위에 물살이 진다. 사람이 없어서 좋은 그런 계곡에 한가한 봄볕이 대지를 두드려 깨우고 있다. 양지바른 바위틈에 핀 진달래, 산수유가 그 예이고 딱딱한 지각을 뚫고 나오는 칼처럼 날카로운 풀잎의 예각과 그 빛과 검은 흙의 대조가 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천에는 폭류도 더러 있고 한 두군데 마참한 폭포도 있다. 산행의 잔재미는 계류를 끼고 올라가는 데서 온다. 물소리는 혼자 가도 마치 누군가 함께 가는 것 같은 생각을 갖게 한다. 바람소리도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서 혼자 산행을 하는 것이 을씨년스런 인상을 줄 것이라고 허튼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혼자만의 산행을, 최대 레저시간의 사용자이면서 친구의 역할이나 부모의 역할 또는 동료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니 얼마나 유아독존적인 산 행이냐 라고 한다면 별로 할말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주위에 많은 사람이 동행을 하면 자신의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인 정신의 흐름이 단절된다. 산에서 무슨 그렇게 강열하게 생각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혼자 골똘한 생각에 빠져 좌우구분, 갈림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빠져있을 리도 없다. 단지 사람의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 인간이 들을 기회가 적은 골안의 물소리, 바람소리, 숲냄새, 꽃향 기, 벌레들의 울음소리, 새소리, 그리고 모든 개별적인 소리들의 총합으로서의 숲의 음향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귀로 듣 는 게 아니라 몸으로 듣고 또는 마음으로 듣는다. 오늘은 유난히 바람이 거세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대화조차 거의 하지 않아도 왁자찌껄한 동행들과 더불어 산행하는 듯하다.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자 개천이 두 골짜기로 갈리고 또 갈리고 .. 그런 식으로 몇 번 갈린 뒤에는 졸졸 흐르는 개울물이 된 다. 이때쯤 해선 5, 6년생밖에 안돼 보이는 낙엽송의 새눈도 눈에 띌락 말락 한다. 높이 400여미터를 올라온 골짜기에서 연엽산을 바라본다. 그쪽으로 황사에 밀려온 구름 한장이 지나간다. 희미한 시야를 가득채우고 있는 우유빛 황사. 능선쪽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은 광풍처럼 잠든 나무를 뒤흔든다. 바람은 황사를 몰고 불어 오는데 낙엽이 무릎까지 쌓인 능선길을 걷는 발길에 튕겨진 낙엽들이 어지러이 능선아래 쪽으로 불려 날아간다. 그게 재미 있어서 발길질을 하듯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쿡쿡 웃음이 나온다. 아내도 강풍에 떠올라 능선저쪽으로 떠가는 낙엽떼를 보며 즐거워한다. 호흡이 조금 가파지려고 할 무렵 적당하게도 눈앞에 전개되기 시작하는 구절산 정상의 모습을 보니, 바람이 심하기는 해도 산행의 기쁨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이제까지의 밋밋한 능선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예각적인 능선이 앞을 막아선다. 여자(아내와 그의 친구)들은 750 미터의 구절산에 간다니까 좋아라 했으나 막상 경사가 급해지는 100미터를 앞에 놓고 헉헉거리기 시작한다. 연엽산에서 구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3분의 1 정도를 걸어왔지만 최초의 능선과 정상이 연결(도화동에서 구절산 정상으로 연결된 능선을 말함)되어있는 것으로 착각한 덕에 한 1킬로미터 남짓 더 걸어야했으나 정상 바로 앞까지는 내리막 길이라 쉬운 산행으로 끝나는가 보다 하다가 급경사가 앞을 턱 가로막으니 당황해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군데군데 바위턱이 불거져 있는 경삿길을 올라가다가 왼쪽 단애의 적당히 조망이 좋은 곳을 골라 쉬면서 동남쪽 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홍천군 북방면이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아름다운 소나무도 벼랑에 한 두그루 서 있어서 안성마춤이었다. 벼랑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북방면쪽 골짜기바닥 숲은 짜임새 있는 화폭의 콤포지션을 보이고 있다. 겨우 파릇파릇 움을 틔우기 시작하는 나무들이 약간은 연초록의 모자이크를 이룬 듯한 이른 봄의 융단이다. 상수리나무계열의 숲, 잡목림, 나무와 조림에 의한 낙엽송지대, 그리고 삼단처럼 싱싱하게 푸른 잣나무숲, 군데 군데 피어있어도 화면의 일부라도 지배할 정도는 못되지만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분홍빛 터치를 가미시키고 있는 진달래등이 각각의 고유색을 서서히 주장하기 시작하는 듯한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숲이 황사아래 하얗게 바랜채 펼쳐져있었다. 색면들의 한계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 색면대비를 두드러지게 할 하나의 현상이 생성하고 있음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현상의 주역은 다름아닌 숲에서 색깔을 뺏어온 햇빛이었다. 갈색주조의 겨울의 색깔이 단조로움의 껍질을 깨뜨리고 스스로 원래의 특성을 회복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그렇게 단조롭게 보이게 한 햇빛 그 자체이었다. 황사바람이 몰아쳐가는 초봄의 구절산.. 봄에 겨울의 적설, 융해, 동결, 그리고 또 융해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빛이라고는 없는 무의 색깔, 무의 상태로 환원되어버린 산에서, 낙엽마저 황사의 커튼에 가려 빛이 바래버린 산야에 모든 삶을 태어나게 하고 죽음으로 이르게 한 태양이 숲의 은은한 반항을 봄빛 아래 노출시키고 있는 것은 장엄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단애아래 골짜기 하나 가득 펼쳐지고 있는 아직은 겨울 풍경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봄의 자태를 보고 있으려니 어떤 희열같은 것이 가슴에 이는 듯하다. 골짜기는 멀지않아 축제를 맞으리라. 속옷부터 갈아입는 처녀와 같이 성장을 앞둔 이 계 절.. 원래 사람이 없는 산이어선지 오늘은 우리팀 말고는 한 팀밖에 없었다. 우리하고 나이가 비슷한 사람으로 부부인 듯 싶었다. 북서풍은 숲을 여지없이 뒤흔들어놓는다. 우람한 소리로 산명을 토해내는 황사바람은 어쩌면 산의 잠을 깨우는 소리처럼 들린다. 겨울이 지배해온 것들에 대한 완강한 저항처럼도 들린다. 아니면, 산은 기지개를 켜고 있는지도 모른다. 태양은 가혹해서 잠들어 있는 대지를 감싸고 있던 정체의 치매상태와 같은 두터운 이부자락을 걷어버리고 잠에 취해있는 아이를 깨우듯이 구절산을 깨우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구절산의 암릉은 동쪽 사면이 천길 단애를 이룬 채 9개-정말 9개가 있는지 모르나 정상에서 5개정도는 눈으로 확인할 수있었다-의 암릉봉을 이루고 있는 특이한 산세를 보인다. 그 옛날 지각이 변동할 때 동쪽 사면이 함몰해버리고 억센 암질이 남아서 풍우에 씻 기고 마멸되다가 오늘의 호방한 단애를 남기게 됐을 것이지만 부근의 산들에서는 전혀볼 수 없는 특이한 산세가 유독 이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구절산은 그 높이에 비해 이 암릉들과 단애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산이라는 것을 비로소 발견한다.
부근에 가장 비슷한 산을 찾자면 연엽산 정상부근, 공작산 정상부근, 그리고 수리봉으로 들어가는 쉰골의 협곡, 그리고 삼악산의 의암호쪽 능선-상원사로 올라가다가 경춘선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으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능선-이 비슷하지만 이렇게 우람장대하게 그것도 아홉개씩이나 솟아 있는 산을 보지 못했다. 연엽산쪽에서 보면 바라보면 한자로 뫼 산(山)자처럼 보인다는 구절산의 정상부위는 연엽산쪽 능선과 연이어진 구절산능선에서 봐도 山자로 보였다.
구절산의 아름다움은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암릉에 있다. 한 쪽은 밋밋한 사면인 반면 한쪽은 한여름의 하늘가의 적란운처럼 철저한 단애를 이루고 있다. 그 단애가 굴곡을 지으며 9개의 암릉봉을 형성하고 있으니 북방면쪽에서 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구절산의 암릉은 널판지같은 석재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단애를 것이 서쪽 사면이라면 동쪽은 그 석재가 켜켜이 쌓여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산이다. 처음에는 암봉 두어개가 있어서 그런대로 이름이 난 산으로 알았다가 남쪽 연봉을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산길은 정상에서 정서방향으로 난 능선길로 아침에 떠났던 꿩사육장 옆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산행시간은 4시간이면 충분하다.


4.8일 구절산 산행 맑음. 황사. 바람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