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산

사진: 태평2년명 마애약사불좌상.

태평2년명 마애 약사불좌상 명문. 소재지: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보물 981호

객산은 하남시에 있는 야산이다. 높이는 200m를 조금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은 남한산성의 한 봉우리에서 북으로 뻗은 능선상의 끝머리부분에 솟아있다. 중부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얼마 상거하지 않은 곳에 이 산은 위치하고 있다. 이 산 이름을 객산이라 한 것은 바로 옆에 솟아 있는 검단산과 가까우면서도 검단산과는 산줄기로 연결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야산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이 작은 산을 왜 찾아야 하는가? 산입구에 향기높은 문화유산 태평2년명 마애불(보물 981호)이 있고 내력이 오래된 약수터, 그리고 작은 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과 검단산 산자락에 해당되는 현재의하남시일대는 백제시대 초기의 수도가 있었던 곳으로 비정되는 지역이다. 객산과 남한산성 자락의 춘궁리를 비롯한 하남벌 일대는 도읍지가 될만한 요건을 갖춘 지역이다. 강원도와 경기 내륙의 모든 문물이 유통되려면 팔당협곡을 빠져나와야 하는데 하남시일대는 한강의 목 팔당협곡을 가까이 두고 있는 지역이다. 물론 한강하구를 따라 배가 올라오기도 하여 이일대는 물산이 집산되는 요지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옛날엔 대량수송수단으로서 유일한 것이 배를 통한 수송이었다. 여주, 이천의 쌀, 영월안쪽의 건축재목과 땔나무도 모두 강을 따라 내려온 것이다. 농산물과 산채, 약초, 멧돼지등 짐승에 이르기까지 한강이라는 수송로는 생활용품의 확보에 없어서는 안되는 수송하이웨이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오늘의 하남시 신장에서 남쪽으로 3km정도(오늘의 동명은 하사창동이다) 떨어진 작은 골짜기 아래의 널찍한 터에 선법사란 암자가 있고 마애불상은 선법사 대웅전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폭포 옆에 위치하고 있다. 비약인지는 모르지만 마애불이란 일종의 야전 회화이다. 상류층에서 즐기던 서화류의 소장과 감상은 아예 불가능하였던 민초들에게 종교적인 것이긴 하지만 마애불은 그들을 위한 회화였다. 물론 제작의 목적은 다른데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민초들이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예술품이었다. 객산의 마애불도 그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폭포아래 명징한 약수를 마시며 올려다본 연좌에 앉아 한손은 보발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의 표정은 한없이 안온하다. 온갖 형태의 영상물에 찌들은 눈에도 아주 신선하게 다가오는 약사여래 마애불은 옛날의 민초들에게는 구원일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각이나 크기나 부조의 양식이 또렷이 인상에 남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폭포아래에 있는 약수터에서 약수한잔을 마시며 마애불을 바라보게 되어있을 정도로 마애불과 약수터는 유기적인 관계를 설정해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데 그렇게 바라본 마애불은 부근의 짙은 숲과 함께 경건한 빛깔이 아련히 보태어지는 듯 싶다.
객산의 마애불과 그 옆의 폭포 그리고 약수터는 규모가 작은 데도 묘한 일체감, 절묘한 조화를 보인다. 이곳의 마애불은 경주남산에서 보았던 몇 종류의 마애불을 빼면 가장 작은 마애불상에 속한다. 그런데 작품의 사이즈가 아담한 것은 폭포옆의 바위의크기와 관계가 있다. 폭포와 같이 선법사 대웅전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약간 기울어지고 윗부분이 삼각형을 이룬 면석 위에 새겨진 이 마애불은 석상옆 면석에 태평2년에 세워졌다는 명문을 판독할 수가 있게 아직도 또렷하다. 태평2년은 고려고종연간에 해당된다. 일부 학자는 고려때가 아니라 백제때 조각된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연대는 훨씬 이전으로 올라간다. 왜냐하면 고려고종때의 연호는 태평흥국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양태진씨 주장).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마애불 옆소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깨밭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객산 정상이 보인다. 깨밭을 지나가면 울창한 숲안으로 들어서게 되고 곧 짙은 송림이 나온다. 골짜기는 수량이 적지만 물소리는 꽤 난다. 요즘 비가 자주 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약수터를 찾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물거나 말거나 나오는 물의 양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 다고 한다.
10분쯤 올라가면 안부가 나오고 길은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지고 왼편으로 비스듬히 휘어진 산복길을 지나 다시 안부에 이른 다음 오른쪽 능선으로 10분정도 올라가면 삼각점이 있는 정상이 나온다. 동으로 검단산-용마산 능선이 보이고 북으로는 하남시와 팔당에서 내려온 한강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남한산성 아래의 상사창동일대가 보인다. 꽤넓은 분지형 계곡안이다. 이 산은 올라가는데 50분, 내려오는데 30분이면 하이킹을 마칠 수 있다. 약수맛을 보며 마애불을 감상한 뒤 울창한 숲속의 하이킹을 1시간 반 정도 즐긴 뒤 내려오면 상쾌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내려오다가 첫번째 안부에서 20미터쯤 더 가서 울창한 송림아래로 들어가면 남쪽으로 넓은 조망이 전개되는데 여기서 보이는 것은 남으로 일직선으로 뻗은 중부고속도로가 빠져나가는 산곡사이의 긴 회랑이다.
여기로 가는 길은 꽤 복잡하다. 우선 신장에 간 다음. 남쪽에 보이는 산자락으로 접근해야 한다. 고속도로아래로 난 토끼굴을 지나가야 한다. 동네 사람에게 선법사가 어디냐고 물으면 대개 대답을 해준다. 절을 모르는 동네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산길, 마애불, 약수터는 모두 선법사 경내에 있다. 알맞게 솟은 바위의 남면에 새겨진 이 약사불 좌상은 "태평 2년 정축 7월 29일"이라는 명문이 있어 고려 경종 2년 (서기 977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화대좌 위에 약함을 든 약사불이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광배는 3중의 두광과 신광, 그 주위에 화염문이 둘러싸고 있다. 나발의 머리칼, 단정하고 부드러운 얼굴표정, 단정한 체구, 형식적인 옷주름 등의 양식적 특징은 통일신라시대보다 진전된 새로운 수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명문이 있어 고려 초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