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영신봉 1652m

대형계곡의 둥근바위와 계류

대성골-세석평전-영신봉

그래픽 판

어제(4.3일)는 대성골로 해서 영신봉까지 갔다 왔다. 산불방지기간이라 입산이 어려운 지리산이지만 취재를 위한 산행으로 의신에서 직원으로부터 양해를 받고 올라갔음은 물론이다. 대성골은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중 하나로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지리산 중부지역 남쪽에 위치한 계곡이다. 쌍계사에서 벽소령쪽으로 들어가다보면 대성교가 나온다. 대성교를 조금 지나가면 의신이다. 의신까지는 매끈하게 포장이 되어있으므로 승용차로 접근하기가 좋다. 대성동을 경유한 세석평전까지의 산행은 이 대성교에서 시작하는 방법과 의신에서 출발하는 길 등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두길은 의신쪽에서는 1.2킬로쯤 대성교로부터는 9백미터쯤 산행한 지점에서 서로 만난다. 대성교에서 왼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의신마을이 보인다. 길이 만나는 지점은 옛 절터였던 곳. 거기에 길표지판이 서 있다.세석까지 7.5킬로미터, 대성동마을까지는 1.3킬로미터. 해발높이는 500미터이다.
영신봉을 오르려면 1100미터를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곳은 대밭이 있고 집터가 있었던 흔적이라고는 큰 나무가 없는 잡목만이 우거진 공터가 보인다는 것 뿐이다. 이 근처에서 건너편 산록에 드문드문 만개한 산벚꽃이 황갈색의 바다위에 떠 있는 하얀 섬들같은 느낌을 준다. 전망이 좋다.
대성계곡옆 능선은 덕평봉(1522)과 바로 연결된 능선으로 이 능선이 칠선봉(1576m)과 영신봉(1652m) 사이에 형성된 또하나의 능선과의 사이에 만든 계곡이 작은 세개골이다. 대성골의 지계곡인 작은 세개골과 그 옆의 큰 세개골이 대성골의 풍부한 물을 공급하는 펌프역할을 한다. 대성동으로 올라가는 이 능선엔 소나무가 많고 소나무 사이에 간간히 진달래가 피어있다. 대성교에서 의신마을에서 대성골로 들어가는 코스와 만나는 지점까지는 한 20분쯤 올라가야 한다. 의신에서 오는 길이 조금 넓은 것으로 보아 그쪽에서 대성골로 들어오는 사람이 더 많은 모양이다. 오르막 1km는 부담이 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의신에서 일박하고 대성골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듯. 이 지점에서는 건너편 갈색일변도의 산록에 피어있는 하얀 산벚꽃이 눈길을 끈다. 보이지 않는 개울에서 큰 물소리가 난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면 영신봉으로 다가가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은 삼신봉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아래 펼쳐지고 있는 계곡은 깊고 심원하다. 오늘 올라가야 할 산이 지리산인 것은 확실하지만 과연 지리산이 아니면 이런 방대한 산세와 깊은 골짜기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대성교에서 세석평전 옆 봉우리인 영신봉까지가 직선거리로 설악산 비선대에서 대청봉까지의 거리와 같다면 이 골짜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별로 구비진 곳도 없이 유연하면서도 깊고, 가까운듯 하면서도 아득하게 좌우에 높은 능선을 세운 채 먼 산곡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산골짜기에 보이는 것은 아직은 갈색의 숲의 바다뿐 봄이 왔다고 말해주는 것은 서있는 산록 길가의 분홍빛 꽃을 몇 개 피운 몇 그루 진달래나무와 계곡쪽으로 내려다보이는 하얀 산벚꽃 뿐이다. 그러나 투명한 아침 공기속에 팔을 뻗치고 있는 나무가지들을 구분해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호방한 산세 앞에서 깊은 계곡을 향하여 올라가고자 하는 마음은 다급해진다. 한편으로는 도전할만한 새로운 세계에 맞딱뜨린 모험가의 심정도 느껴질만했다.
산록에서 조금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윗길은 민가로 가는 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등산로는 아래쪽으로 나있다. 물소리가 시끄러운 개울을 만나려는 것이다. 개울에 당도하면 지리산의 중산리나 백무동등 계곡 중하류에서 흔히 보는 둥근거석들이 그득한 개울풍경이 대성동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성동의 개울풍경은 더 짜임새가 있고 더 매혹적이다. 둥근바위들은 깊은 소의 물속에 박혀있고 더러는 솟아올라 매끄럽고 정갈한 하얀 피부를 드러낸 채 계류의 번롱을 불룩한 배로 걷어내며 수위가 미치지 못하는 주위의 검은 바위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물은 투명하고 수량은 풍부하여 조금이라도 높은 곳은 무조건 폭포를 만들고 그 아랜 더러는 수심이 상당히 깊은 소가 끓는 듯한 포말을 토해낸다. 그 규모와 수량, 그 깊이와 다양한 흐름은 대성골의 매력을 기억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이다. 바위들 중에는 상당히 커서 그위에 작은 소나무 한 두 그루를 무등 태우고 계곡의 바람을 쐬게 하는 바위도 있다. 특히 시선을 끄는 곳은 깊은 소가 패여있는 옆으로 둥글둥글한 굵다란 바윗덩이들이 소를 감싸고 있고 그 옆엔 소나무가 한 그루 서있으며 소아래쪽은 깊은 굴헝처럼 계곡이 깊이 내려앉은 곳이었다. 위를 보면 하늘을 찌를 듯한 산봉우리들이 맥을 이루어 이리저리 달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가 바위틈엔 어느새 파란 잎을 틔운 물가에 자라는 키작고 가지 많은 나무들이 자기 몸체크기만한 파릇파릇한 둥근 윤곽을 허공에 그리고 있다. 이런 곳이 나오면 별로 하는 일 없이 상당한 시간동안 지체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있다.
별유천지 비인간... 인간의 세계를 이곳처럼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여야 한다면 비인간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물, 빛, 바람, 공기, 바위속살에 끼여있는 반짝이는 운모, 폭류소리, 원경의 갈색, 근경의 갈색, 그러나 이제 서서히 연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대성골의 나무들.. 이 한없는 해맑음과 깨끗함이 대성골의 아침에 무한히 빛나고 있다.
사람들은 걱정이 신경을 태우듯하거나 누군가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생각나든가, 분노를 삭이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단순히 승경을 더 즐기기 위해 개울가로 나온다. 왜냐하면 거기엔 위안이 있기 때문이다. 깊은 소를 위하여 비켜선 돌무데기들이 범상한 돌들이 아니라 한덩어리 한덩어리가 이 계곡의 격류와 풍상이 만들어 이곳에만 알맞게끔 조형적으로 완성시킨 돌이나 바위라면 그리고 그 소에 좁은 협곡에 내리비치는 하늘이 괴어 있으면 더욱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의 사진을 보면 지금도 물속에 들어가 소의 물을 한없이 들이키고 싶던 달랠길 없던 갈증같은 것이 생각난다.

물소리 요란한 대성골의 풍요함

엊그제 지리산 일대의 폭설과 강우로 물이 불어난 대성골은 하루종일 시끄러울 정도로 물소리가 요란했다.개울의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계곡의 상류쪽의 한 폭포에서 물보라가 뽀오얗게 피어오르는 것이 아침녘 햇빛에 빛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환상적인 물의 갈라 쇼였다. 이곳을 지나가면 조금 급경사가 되고 왼쪽 산록에는 잎이 큰 낙엽교목으로 줄기의 색깔이 유난히 흰 잘생긴 나무들이 나타난다. 곧이어서 민가 3호가 있는 대성동에 도착한다. 대성교에서 이곳까지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봄엔 고로쇠물채취, 산나물채취, 여름엔 약초채취, 민박집 운영, 가을엔 버섯채취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특히 봄철에는 고로쇠 나무의 수액채취땐 비닐 호스를 몇 백미터씩 깔아 거의 반자동으로 수액을 채취한다. 올해엔 큰 물통 하나에 4만원씩을 받았다고 한다. 수액을 채취할 수 있는 기간은 경첩을 전후한 보름간으로 한달이지만 경첩전후 일주일간 채취한 수액이 가장 효능이 높다고 한다. 이뇨제, 요통, 관절염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은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가 높지만 인기가 높으면 부정이 개재될 소지 또한 많아지는 듯하다. 주위엔 오골계를 키우는 닭장도 있다.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얼키고 설킨 하얀 비닐 호스가 사진촬영의 장애물이 된다는 점이다.
여하튼 이 대성골의 고로쇠물은 최고의 효능을 가졌다고 자부할만하다. 그만큼 골이 깊고, 공해가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대성동의 젊은 가장 김기식(0595-83-0835) 씨는 호스를 걷어내야 한다면서 동료 2명과 함께 산을 올라간다. 그런데 그 호스는 대성동 위쪽 거의 2km정도되는 곳까지도 이어져 있어서 놀라웠다.
대성동 일대의 경관도 아름답지만 대충 훑어보고 다시 산행길을 재촉한다. 대성동에서 모롱이를 돌아가는 길은 한쪽은 단애, 길아래 오른쪽도 단애이고 그 단애아래로 개울이 흘러가고 있다. 한 20여분 올라가면 작은 세개골물과 삼신봉능선쪽에서 흘러온 물과 큰 세개골 물이 합쳐 내려온 물의 합수점이다. 세개골쪽으로 폭포가 떨어지고 있고 폭포위로 다리가 걸쳐져 있다. 다리를 건너면 길은 오른쪽 개울옆으로 다가간다. 다리아래를 흐르던 물은 작은 세개골 물이다. 모롱이를 돌아가면 개울은 여전한 수량으로 물소리도 요란하게 다시 나타나는데 산죽밭을 조금 올라가면 다시 다리가 나온다. 다리아래는 바닷가에서나 봄직한 반석이 깔려있고 그위로 물이 미끄러지듯 흐른다. 여기서부터는 산죽밭이 꽤 길게 이어지다가 표지판에 다가선다. 표지판엔 해발 900미터, 큰 세개골, 세석산장 4km, 대성동 2.2km라고 씌어져 있다. 큰 세개골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노 트레일 마크도 있다. 이 표지판 위쪽으로도 산죽밭은 조금 더 계속되다가 개울도 길도 너덜겅지대로 변하는 삼신봉-영신봉 능선에서 발원한 지천계곡이 된다. 개울은 이제야 규모와 수량이 조금 줄어든다. 지루한 계곡길을 올라가면서 길은 개울과 멀어지고 급경사를 올라가면 지능선의 안부다. 안부에서 조금 올라가면 바위 전망대가 있다. 이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시원하다. 반야봉-임걸령 능선, 멀리 왕시루봉능선, 반야봉-영신봉능선의 상당부분이 앞으로 보이는 왼쪽으로 삼신봉 능선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 전망대에서 대성골일대 대부분이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위쪽 암봉은 삼신봉능선상의 암봉이다. 전망대에서 5분이 채못돼 드디어 거림골이 내려다보이는 삼신봉능선에 올라서면 표지판이 반긴다. 표지판엔 삼거리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세석산장까지는 2.2km, 삼신봉까지는 5.3km, 대성교까지는 6.4km이다. 세석까지는 거의 평탄한 길로 되어 있어 산행길은 이제 순조롭다. 능선봉에 올라서면 촛대봉이 등고선을 따라 길쭉하게 눈을 이고 하얗게 솟아있다. 4월 초하룻날 내린 폭설때문일 것이다. 기온이 극히 포근했는데도 그날 내린 눈과 언 빙화가 이제사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설경은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듯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영상 10도의 햇빛아래서 빙화를 보고 있자니 묘한 생각이 든다. 조금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 양쪽에서 물이 나오는 음양수샘터이다.
음양수 샘에서 세석산장까지는 응달의 눈이며 빙화들이 녹느라고 가장 작은 도랑에도 물이 흘렀다. 세석산장에 도착한 것은 6시간이 경과한 오후 2시넘어서였다. 보통이라면 4시간 반정도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거리이지만 촬영이다 메모다 할 경우 두어시간은 금방 플러스되기 때문이다. 세석산장 아래 평전의 전나무숲에서는 비오듯 눈녹은 물이 소나기처럼 쌓인 눈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전나무숲속으로 들어갈 때 그 눈녹은 소나기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산장위쪽은 환상의 빙화밭을 이루고 있어서 혼자 보고 있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대단한 경관이었다. 사월에 보기엔 너무 아름다운 겨울풍경이었다.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맑은데 햇볕은 포근한데 진달래나무, 철쭉나무가 얼음옷을 입고 평전의 계곡과 촛대봉 영신봉의 밋밋한 산록에 가득히 펼쳐져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좌우에서는 빙화가 녹아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영신봉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본 천왕봉은 평소보다도 훨씬 다가와 있었으며 4월의 햇빛으로 한겨울풍경을 보니 설봉, 설사면, 설화에 눈이 부셨다. 반야봉에서 세걸산에 이르는 능선이나 영신봉에서 반야봉으로 가는 길은 높낮이가 거의 없어보여 두 서너시간이면 충분히 도달할 것 같다. 그러나 벽소령산장이든 무슨 산장이든 산불방지기간에는 다 폐쇄되어 산행활동은 제약을 받는다. 세석평전엔 많은 사람이 찾아옴으로 인한 땅의 세굴화현상과 황폐화 현상을 막기위해 지정 등산로 이외엔 철망을 쳐둔 곳도 있다. 그 철망에 마치 투명한 담장처럼 얼음이 얼어있는 광경은 지리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인지도 모른다. 그 얼음이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마치 칵테일용 얼음처럼 우루루 땅으로 쏟아지곤 했다. 게다가 이 축제같은 빙화잔치에 초대(?)된 사람은 나혼자뿐이라는 게 을시년스러웠지만 이런 광경도 누군가 보고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원래는 영신봉에서 벽소령산장으로 가기로 했으나 산불방지기간중 산장은 모두 폐쇄돼 있어 갈 수가 없었다. 내려오는 시간은 3시간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중간에서 일행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대성골 산행은 출발지에서 대성동아래 계류와 만나는 지점까지를 1단계(산록횡단), 이 지점에서 대성골 계곡의 큰 지류인 큰 세개골, '등산로 없음'내용이 들어 있는 표지판이 있는 해발 900미터지점까지가 2단계(대성골의 계류와 나란히 올라가거나 다리로 건너거나), 이곳에서 너덜지대를 올라가 안부에 이른 뒤 삼신봉에서 오는 능선과 만나는 삼거리까지가 3단계(너덜지대 오르막), 삼거리에서 세석, 영신봉까지가 4단계(전망좋은 능선 산행 및 평전횡단)라고 보면 도움이 될 듯하다.

의신마을민박:청학새터 0595-83-1805 요금:25000원 쌍계사민박:약수골민박 011-622-6769 요금 2만원 /사거리집민박 83-1871 /찻집민박 83-2904 /10리벚꽃민박 83-8938


1998.4.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