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0m [ 한국의산 ]

 
위치: 경기 남양주시 - 화도읍 : 서울동부의 산. 정상이 암릉
코스:
산행지도:

산행기



 

사진:금곡쪽에서 본 천마산

5월이 되면 부지깽이에도 순이 돋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날(어느해 가을날) 천마산의 고사목에도 단풍에 물든 잎이 달리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그해(1987)는 단풍이 유난히도 곱게 물든 해였다. 그해의 단풍을 보고난 뒤 그보다 아름다운 단풍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특정한 산의 산록이나 골짜기에서 국지적인 아름다움을 빛내는 단풍은 있었지만 능선과 산록이 곱게 물든 단풍으로 온통 수놓여진 풍경을 본적이 별로 없다. 그때 이후 단풍이 곱고 곱지않는 척도가 된 천마산의 단풍을 경험한 이후 9년남짓 산행을 계속해오고 있지만 그해 천마산의 단풍만큼 곱게 물든 단풍을 다시 본 적이 없다는 믿음은 여전하다. 산행을 끝내고 평내로 내려오면서 뒤돌아 본 천마산 단풍은 정상일부의 나목군을 제외하고는 평지까지 어떤 그림으로도 묘사하기 어려운 화려한 단풍수틀을 보여주는 거대한 삼각형의 한면으로 기억된다.
산에는 특별히 아름다울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계절이든, 하루중의 어느 시각이든 정말 우연히 그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산은 영원히 기억에 남는다. 천마산의 단풍은 11월 초하루, 바람이 몹시 심한 오후에 본 광경이라는 시간적인 한계를 가진 것이어서 덧없는 풍광임이 분명하지만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순간은 영원과 통한다고 했던가?
천마산을 찾은 날은 맑은 날은 아니었다. “원래 흥분을 잘하지만 천마산의 단풍은 나의 정신을 반쯤 나가게 할 정도였다" 그날 메모한 노트 한귀퉁이에 이런 말이 적혀있다. 11월 1일이면 가을이 저물 무렵이다. 고별의 축제를 위하여 천마산은 혼신의 힘을 쏟아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총동원, 가장 호화로운 의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던데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날 산행은 평내에서 곧바로 북쪽 능선으로 올라가 이 능선을 타고 천마산 정상으로 갔다가 다시 평내쪽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밑에서 보아 괜찮을 듯하면 진입로에 별달리 신경쓰지않고 길이 있든 없든 올라가는 식의 행보로 도달한 곳은 경사가 없는 해발 500미터정도 되는 평탄하고 야트막한 능선이었다. 급경사를 이루며 치솟은 정상쪽은 겨울철 나목숲 특유의 회갈색으로 정착되어 있었으나 그 아래쪽은 단풍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이날 이 천마산의 낮은 서쪽 능선의 단풍이 너무도 아름다웠던 것이다. 언젠가 어떤 영화에서 여객부두를 서서히 떠나가는 호화여객선을 향하여 떠나보내는 사람들이 오색 색종이 테이프를 던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장관이었다. 수백명의 환송객이, 떠나가는 여객선을 향하여 형형색색의 테이프를 던지는 것을 보니 그 순간 이별은 적어도 그 부둣가에서만은 화려한 슬픔이었다.
아무리 화려해도 이별은 이별. 가을이 떠나가는 천마산에서 받은 가장 강열한 느낌은 그 부둣가의 오색 테이프의 흐름을 타고 번져 오는 슬픔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었다. 그날 나는 슬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목이 메는 듯한 느낌을 여러번 가졌던 것 같다. 나중에 슬픔의 근원을 따져 보니 그것은 기가막힌 충격에 대한 내 나름의 반응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중턱에서는 습기찬 바람이 맹렬하게 불어가고 있었는데 바람의 흐름을 타고 색종이처럼 울긋불긋한 단풍잎들이 숲사이로 일제히 바람에 밀려가곤 했다. 평내에서 내려 정식 산행코스인 산의 입구를 찾지 못해 엉뚱한 곳에서 능선을 타게되었는데 이것이 가는 가을을 만끽하게 해주려는 대자연의 배려인 줄을 능선을 향하여 첫발자국을 뗄 당시는 알리가 없었을 것이다. 능선에 오른 뒤부터 호젓한 산길에서 낙엽을 밟으며 산이 나에게 던지는 오색 이별의 손수건 자락에 파뭇히듯 했다. 굴참나무, 낙엽송, 사스레나무, 그리고 단풍나무... 내가 알건 모르건 나무란 나무들은 온통 붉거나 적갈색이거나 황갈색의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단풍에 물들면 어떤 모양이 될까? 그 이상적인 해답이 능선에 줄이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 내게준 감동 때문이었을까? 어제 아내와 무슨 이야기중에 “죽으면 죽었지 무슨 미련이 있을 턱이 있나"하는 투로 우연히 화제가 된 늙어감과 죽음에 대한, 평소 생각의 일단을 서로 토로했던 기억이 난다. “아! 이렇게 푸지게 낙엽이 떨어지는 산골에 묻힐 수만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단풍이 든 숲속의 아름다운 산길이 미(美)의 영원함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영원한 것이고 아름다움의 극치도 영원한 가치라면...





사진:축령산에서 본 천마산

정상부근은 이미 단풍이 지고 겨울이 성큼 자신의 최초의 황량한 풍경을 흉내내고 있었다. 그러나 정상아래 능선에서는 단풍이 한창이었다. 굴참나무의 경우 대개는 단풍이랄 것도 없이 시들시들 말라버리는 것이 보통이랄수 있는 단풍인데 이곳의 굴참나무는 붉은 기가 도는 기막힌 커피색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 본 가장 아름다운 굴참나무 단풍은 엄청나게 많은 잎을 달고 있는 거대한 나무전체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온전히 하나의 색깔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안부와 그 아래쪽 골짜기에 낙엽송 숲이 있었다. 이 낙엽송에 단풍의 노란 파도가 밀려와 있었다. 호젓한 산길에 거의 3,4센티 깊이로 낙엽송의 노란 낙엽이 떨어져 있었다. 노란 낙엽송 침엽 낙엽을 밟아본 일도 이곳에서가 처음이었다. 그것은 노란 실로 짠 천국의 융단이었다. 그것을 밟는 맛은 한편으로는 날개를 단듯 가벼웠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정갈하면서도 오묘한 신선미에 질려 발자국이 날까 두려운 기분도 들었다. 나는 일찌기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정말 아름다운 순간은 폭풍이 낙엽송 위로 불어올 때였다. 금빛으로 물든 낙엽송의 솔잎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랗고 짧은 침엽을 노란 눈가루처럼 어깨위에 뿌리며 갔다. 그 노란 솔잎이 바닥에 쌓여있는 광경은 능선과 능선사이의 자그마한 골짜기에 있었는데 금빛낙엽이 떨어져 있는 바닥은 물기가 촉촉히 배어나온 습지라 식생이 좋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낙엽송숲은 이곳에서 산록위로 뻗어있었다. 높이 10여미터는 되어 보이는 낙엽송수림은 아직도 많은 잎이 남아 있어서 하늘도 환해보였다. 그래도 골짜기가 좀은 어둡지만 겨울이 오면 낙엽송 잔가지가 모진 바람에 울고 눈이 쌓이면 환해지겠지. 그 하얀 눈쌓인 골짜기가 웬지 연상이 되지 않았다. 아니 연상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은 음침한 골짜기일 수밖에 없는 후미진 골짜기가 노란 낙엽송의 단풍으로 하여 환해져 있는 가을의 어느 하루가 언제나 잊혀질지. 죽어서 묻히는 곳이 죽은 이의 영혼에 선한 영향을 준다면 나는 당연히 이런 계곡에 묻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산하여 차에 올라 경사길을 내려오면서도 나는 차창 너머로 국민학생이 크레파스로 그린듯 울긋불긋한 가을로 화려하게 채색된 천마산을 보면서 왜 가을이 그렇게도 가슴을 쓰리게하는지 몰랐다. '아! 정말 이런 가을은 난생 처음이다" 나는 단지 그렇게만 말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겨울:

천마산은 경기도 남양주군 묵현리에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산이다. 새삼스럽게 묵현리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번엔 그쪽으로 산행을 했기 때문이다.
천마산엔 조망이 좋은 능선이 있다. 묵현리에서 청소년 수련원으로 올라가 급경사 골짜기길을 타고 오르면 그 능선에 도착한다. 큰 규모의 산이 아니면서도 이 능선으로 정상까지 가는 능선길은 조망의 변화가 좋아 능선산행의 묘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96년 2월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이런 날에도 기를 쓰고 나가는 게 버릇처럼 되어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요즘(겨울 이른 아침)이런 날에는 다소간 망설여진다. 산에 가야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전보다 훨씬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서울에는 비가 오더라도 강원도나 경기북부지방의 고개는 눈이 오든가 아니면 눈비가 와서 굉장히 미끄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아침 일찌기 떠나면 차가 그렇게 많지 않아 길이 조금 미끄러워도 조심해서 운전하면 갈 수 있었는데 요즘은 차들이 많은데다가 곡예 운전을 하는 예를 심심치 않게 경험해선지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기가 어려워졌다.
그날아침도 그렇게 우물거리다가 집을 나선 것은 6시반을 넘겨서였다. 길에는 얼음도 없었고 눈이 온 흔 적도 없었다. 불필요한 걱정만 한 것일까? 마치터널이 가까워지자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다. 원래 붐비는 곳이라 으례 그러려니했는데 마석이 가까워지자 길에 젖은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얼음이 녹지 않고 있다가 비가 오자 녹는 것인지 아니면 비가 오면서 길바닥이 얼기 시작하는 것인지 알수 없었다. 그러나 길이 아주 미끄럽다는 것은 내차가 어느 순간 휘청거리면서 미끄러지는 것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명지산으로 가려면 축령산 부근의 고개도 문제였지만 만일에 오는 비가 계속 얼어버리는 기이한 기상상태라면 상온이 이곳 마석일대보다 훨씬 낮은 곳에선 미끄러운 현상이 심했으면 심했지 덜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석에서 천마산으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비오는 날 차타고 나서는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그것이 2월에 내리는 비이기 때문이다. 2월에 내리는 비는 평지에서는 구질구질할지 몰라도 높은 산에서는 눈으로 내린다. 이날도 이상한 흥분을 안고 집을 출발한 것은 오늘의 산행이 가져다 줄 설중산행의 특이한 감동과 경험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눈오는 설릉에서 깊은 골짜기를 배경으로 눈발이 나목의 갈색수피를 배경으로 비스듬히 비껴 내리는 것을 보면서 나름의 감동에 사로잡히고 싶기 때문이다. 그 배경능선에 노송숲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천마산 암릉엔 노송숲이 있다.
천마산 가는 길 부근은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지금 서울부근의 경기도 전지역에서 광범한 도시화가 진척되고 있다. 그렇다면 천마산 일대도 곧 도시속에 떠 있는 섬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곧 그렇게 될 것을 예상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승용차보급의 일반화와 전원으로 향하는 도시민의 심리적 구조가 정착하고 있는 게 그 이유다. 그전에는 서울에서 여기까지만 나와도 시골냄새가 푹푹 풍겼다. 천마산일대의 도시화가 가속화할 것은 명약관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또하나의 산이 망가지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쉬운 일이다.
마석에서 천마산으로 들어가려면 청소년 수련원을 통과해야한다. 그곳이 산행기점이기 때문이다.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렸다. 이러다가는 산에도 제대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도로 내려와야 할지도 몰랐다. 문제는 비가 온다는 사실이 아니다. 자연현상이 얼마나 오묘한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내리는 비가 땅에 닿자마자 그대로 얼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일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기상이변이다. 아무리 작은 돌이라도 비가 내려 그 작은 돌이 젖는 순간 얼어버리기때문에 마치 팥알에 조청을 씌운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얼지 않은 흙이 검게 노출된 밭에 비가 내리면서 얼게되니 투명한 엿을 씌운 것 같고 마치 먹음직한 초콜리트위에 조청을 들어부운 것과 같은 시각적인 효과를 빚어냈다. 참으로 희한한 광경이었다.
이런 상태가 되니 길을 걷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아이젠을 했다가도 마을에 내려오면 아이젠을 벗는 것이 정상인데 이건 마을에서부터 아이젠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나 내려가는 사람들이 전전긍긍한다. 청소년 수련장 입구에서 입장료(1000원)를 내고 전나무숲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전나무숲길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여기서 능선에 올라서기 까지는 대강 30분여분이 걸린다. 전나무숲엔 눈이 내린 흔적이 있지만 눈덩어리를 툭툭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비가 오는 천마산능선(천마산은 능선산행의 산이다)에서 본 천마산 일대의 조망은 뜻밖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안개가 골안에 자리잡고 허공에서 움직이지 않고 떠있는데가 있는가 하면 능선을 경계로 하여 한쪽은 짙은 운무속에 나무한그루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오리무중이고 한쪽은 안개가 싹 가셔서 아름다운 골짜기의 비오는 날의 숲의 혼곤한 정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쪽의 공기가 습도나 온도에서 능선다른 쪽의 온도와 사뭇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능선을 기어넘어가는 안개가 있는가 하면 반듯한 띠를 이룬채 능선과 능선사이에 척 걸쳐져 움직이지 않고 있는 안개도 있었다. 천마산능선은 조망이 좋은 능선이지만 안개가 부리는 조화는 낮은 산인데도 운해를 보는 재미를 안겨주었다. 능선길가의 억새풀들은 비를 맞고 노랗게 보인다. 그억새풀의 황색이 주는 정결한 인상에 언제나 감탄하는데 그것은 산위의 오염 안된 대기와 하늘, 그리고 오염 안된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와 관계된 어떤 요소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더욱 정갈해보이는 것이리라.
천마산 능선은 군데군데 바위들도 있어서 보기가 좋다. 그 바위 위에 올라가면 조망이 좋기도 하고 멀리서 천마산을 보아도 산을 기품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골짜기를 싸고 돌아가는 능선의 각도가 예각을 이룰 때마다 이런 바위 전망대가 보인다.
정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정상능선은 꽤 긴편이지만 기복은 심한 편이 아니다. 군데군데 바위가 있지만 세미클라이밍이라 할 정도도 아니어서 가볍게 올라갈 수 있다. 마석쪽에서 올라가려면 청소년수련장에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급경사가 나타나고 급경사를 오르면 지능선이 된다. 이 지능선을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계곡이 나타나고 주봉이 보인다. 지능선 산길은 조망이 좋은데다가 가을과 겨울엔 억새가 볼만해서 걷기가 좋은 코스이다. 이 능선을 올라가면 여태껏 동쪽만 보이다가 마치터널 뒤쪽에 해당하는 평내리가 보인다. 여기서부터가 정상능선이 된다. 이젠 서울쪽방향이 툭틔어 아름다운 조망은 사방으로 뻗친다. 이전에는 평내일대도 호젓한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고층아파트가 늘어서 있고 특히 부근엔 스키장이 만들어져서 일대의 전원지대는 이젠 옛날같이 호젓하지가 않다.
정상능선에 올라서니 얼음이 많아지고 서쪽과 북쪽에는 괘 많은 눈이 쌓여있다. 비가 오기전엔 눈이 왔으리라. 바람은 여전히 그렇게 차갑지가 않다. 눈이 올 줄 알았던 게 잘못이었다. 높은 산엔 눈이 오고 낮은 산엔 비가 온다던 이른봄의 기상상태 그대로 해발 800미터 이상엔 눈이 올 줄 알았는데 눈은 오지 않고 비가 내렸다. 예정대로 명지산엘 갔더라면 눈을 맞을 수 있었을 것 같지만 미끄러운 길을 무슨 수로 운전한단 말인가? 정상능선은 평지같지는 않지만 대체로기복이 없다. 꼭대기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동쪽이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고 능선자체도 한바탕 바위가 나타나 변화가 있다. 그러나 바위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능선엔 천마산을 잊지 못할 산으로 만드는 노송이 바위틈에 자라고 있어서 운치가 보통이 아니다. 얼음과 눈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정상부근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그 쪽은 완전한 설국이다. 비로소 겨울산의 풍모에 접한다. 천마산을 오르기도 여러번이었건만 이 노송들만이 겨우 기억의 그물망을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천마산이 동쪽에서 보면 높은 단애의 지붕위에 능선을 띄워놓고 있는셈인데도 그런 기억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이 단애는 의외의 느낌을 준다. 눈과 노송, 바위와 바람, 천마산은 아름다운 능선이 갖춰야할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윽하고 운치있는 곳이었다. 비가 다시 내리기시작한다. 소나무숲에 내리는 빗줄기로 소나무 잎에는 얼음이 얼어있지만 비가 내려 침엽끝마다 물방울이 매달려 있다. 안개가 들락날락하는데도 물방울이 그렇게 많이 맺혀있지 않은 것은 일부는 얼고 일부는 녹고 하느라고 그럴 것이다. 천마산의 소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왜 그렇게 아름다울까? 단애끝에 서서 낮은 산록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애아래에는 키가 큰 소나무들이 죽죽 뻗어올라 벼랑 바로 아래까지 자랐는데 능선의 노송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천마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에는 4시간 정도면 여유있게 산행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천마산이 쉬운 산이 아닌 것을 올라올 때마다 느끼게 된다. 그리고 계절마다 산의 모습은 극단적으로 틀린다. 내려올 때에는 길이 다녹아 미끄러운 곳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