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860m
위치: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코스: 광석나루터에서 2.5킬로미터쯤 위쪽 골짜기산입구 팻말-응진전-경일봉-841봉-보살봉-795봉-821봉-청량산정상-조금 되돌아나와 남쪽 계곡길-마을-밭뚝길-청량사아래도로
교통: 서울 동서울 터미널 - 영주(6.35분 첫차, 오후 5시 35분 막차 50분배차), 동서울터미널-안동(6시10분 첫차, 오후 6시30분 막차 30분 배차 4시간20분 소요) 영주-봉화(직행버스 하루 32회운행) 봉화-청량산입구다리(봉화에서 북곡행 버스 탑승, 청량산입구에서 하차 1일6회운행), 안동-청량산입구(시내버스 운행- 6시부터 오후 5시 50분까지)
드라이브 코스:서울 -영동고속도로 -남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 -영주 -봉화 -명호면 -낙동강변드라이브코스 -청량산(청량산에 이르기전 낙동강변 드라이브코스는 차량도 적고 경관이 뛰어나 국내 드라이브 코스중 최고라고 꼽는 이들이 많다)
숙박: 광석나루다리 부근에 청량산 민박-054-72-6959 등 민박집 다수

문화재와 볼거리: 청량사, 김생굴, 안동의 도산서원, 온혜온천
청량산 산행지도

청량산 66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도화가 문제로다

청량산 66봉을 찾아가던 날 아침은 조금 긴장이 되었다. 과연 당일 산행이 가능한가 확답을 내릴 만한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당일등반을 하기에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다. 영주 풍기의 국망봉이나 형제봉까지도 가보았지만(당일산행) 청량산이 있는 봉화까지는 무리가 아닐까 싶어서였다. 청량산은 봉화라도 군의 동쪽끝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진설명:산아래서 본 청량산의 암벽
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러나 원주를 지나 소백산 죽령에 2시간여만에 도착하면서 당일산행에 대한 확신이 섰다. 이정도라면 이른 아침에 서울을 출발한다면 청량산 당일산행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당일산행을 하고 12시이전에 서울로 돌아왔다. 사실 전국에서 당일 등산이 불가능한 곳은 호남일대와 경남일대의 산 그리고 지리산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당일등산은 체력안배도 문제이지만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다. 그래서 언젠가 봉급생활자의 위치를 벗어난다면 보다 여유있는 산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것은 몇년전이야기이고 지금(2000년)은 서울서 2시간만에 죽령에 도착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도로여기저기에 복병처럼 설치되어있는 속도위반차량단속 카메라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차량도 많이 증가하여 시골이든 도시든 신호대기시간이 길어졌다.
청량산
높이: 860미터
산의 특징:편마암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층암, 암봉-암릉으로 이루어진 산, 주왕산의 암질과 비슷한 데가 있다.
산행특색:능선산행
식생:대부분의 능선엔 소나무숲이 울창하다.
조망: 산의 서쪽으로 낙동강이 흐르며 강은 도산서원 앞을 흘러 안동호로 들어간다.
산행시간:6시간
산행일자:96년5월

청량산 최고봉을 장인봉이라 한다. 장인봉은 낙동강 상류쪽으로 솟아 있어 정상에 오르면 안동호로 흘러들어가는 낙동강 상류와 청량산이 만나는 아름다운 계곡이 내려다 보인다. 청량산의 다른 봉우리로는 이밖에 외장인봉, 선학, 연적, 자란, 금탑, 향로, 탁필등 모두 12개 봉우리를 갖고 있어 퇴계도 "청량산 66봉"이라 했다. 석질은 편마암으로 되어 있으며 주왕산과 함께 특이한 경관을 보여준다.


사진설명:능선위의 한 봉우리인 보살봉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도 청량산의 특이한 경관에 주목하여 청량산 계곡에 들어와 "사면에 석벽이 둘러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청량산옆 강변도로가 좋아 접근하기가 쉽다.
청량산이 있는 도립공원으로 가려면 봉화를 지나 10킬로 조금 못미친 곳에서 봉성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그냥 통과한 뒤 태백쪽으로 가다가 현등-태백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밑(오른편)으로 꺾어 강을 끼고 내려갔다. 강폭은 30미터도 되지 않았지만 물이 맑았다. 이곳이 낙동강 상류였다. 어디서 내려오는 물인지 지도를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예천 쪽으로 흘러가는 내성천이 아니라 낙동강 본류인듯싶다. 강을 끼고 조금 내려가면 곧 고갯길이 되는데 최근에 포장된 도로임이 분명했다. 길은 강을 끼고 갈 수 없을 정도로 양쪽이 아마 험준한 절벽으로 되어있는 모양이다. 이 길은 산을 통째로 넘어서야 다시 강의 본류 옆으로 가까스로 나왔다.
이곳에 오면 벌써 강폭은 넓어진 데다가 어제밤 비가 적지 않게 내린 것 같고 또 상류쪽 얼음이 녹아선지 물빛이 많이 흐려진 채지만 도도히 흐르고 있다. 강속에 바위들이 비죽비죽 나오고 물에 씻긴 바위가 소용돌이 옆에 반질반질 햇빛을 받아 빛나는 곳에 이르면 청량산이 지척임을 알 수 있다. 길과 강을 건너 저쪽 산록은 이미 벼랑으로 병풍을 이루고 있다. 물은 벼랑아래쪽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 흐르는가 하면 때로는 호수에 들어온 것처럼 유순하다가도 구비쳐 내려가는 곳에선 성난 파도가 되어 으르릉거리면서 흘러간다. 이곳이 아름다운 것이 도화로 하여 알려질까 퇴계가 못내 불안해하던 그 강물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사진설명:정상에서 내려다본 촛대봉
___________________________


관리사무소, 육각정, 청량사로 들어가는 도로앞을 지나 마지막으로 입석이 있는 곳에 와야 비로소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이 된다. 산행은 급준한 경삿길로 치고 올라가는 형태로 시작되지 않고 층암이 만들어놓은 테라스성 평지를 따라가면 되는 그런 산행이다. 낮은 테라스에서 한 단계 높은 테라스로 이동하려면 그 경사도는 45도에 육박하는 급사면이 된다. 그러면 다시 능선이 되거나 층암위의 또다른 테라스가 되거나 한다. 응진전으로 가느냐 청량사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응진전으로 가려면 급사면 올라가야 하고 테라스에 올라가면 청량사에 22대(테라스)가 있다는 전망좋은 자연누대가 골짜기아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조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등고선을 따라 걷는듯 평탄하게 뻗어 있는 오솔길로 접어들어 7,8분정도 걸어들어가면 있는 응진전은 조그마한 암자이지만 산등성이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좋고 더욱 사람을 놀래키는 것은 암자뒤의 천인절벽이다. 암벽은 도봉산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산이라면 어디서나 흔한 화강암이 아니라 주왕산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암질이다. 시멘트로 흙과 모래, 그리고 돌멩이를 적당히 섞어서 만든 덩어리같다고 하면 정확한 설명이 될 것이다.


사진: 청량산의 독특한 봉우리들

그 바위들은 주상형 암봉같은 인상을 준다. 몇배 큰 배흘림기둥을 생각하면 된다. 응진전 뒤의 암벽도 몇개의 배불둑이 배흘림기둥이 서있다고 생각되었다. 이곳에는 감로수라는 약수도 있다. 암자 오른쪽 가옥옆 암봉아래쪽에 있다. 응진전에서 한숨 돌린 후 급경사를 올라간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지만 이 부분은 육산이라 아주 미끄럽다. 이곳을 20분 가량 올라가면 안부에 닿는데 안부에서 아래쪽으로 절 안마당이 보인다. 청량사이다. 안부에서는 그리 급하지 않은 경삿길을 따라 올라가면 주능선으로 연결된 능선길로 경일봉이 보이고 그때부터는 경사는 완만하여 약간씩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즐거운 산행을 계속하게 된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층암위의 전망대에서 골짜기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조금 평탄한 길을 가는 식의 지루하지 않은 산행을 계속하게 되는데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정상은 경일봉이 아니라 윈쪽 멀리 솟아있는 봉우리였다. 그 봉우리는 중간거리에 있는 보살봉보다도 낮아 보였지만 그 정상에 가기 위해 나중에 들인 공을 생각하면 처음 그 봉우리를 쉽게 본 것은 오해라도 여간 큰 오해가 아니었다. 아뭏든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암봉이 하나씩 선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층암위에서 보면 산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암봉위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지만 멀리서 보면 틀림없이 암봉 위에 서 있곤 하는 것이었다. 암봉부근에 노송이 울창하여 동양화적인 미감을 자아내는 곳도 심심치 않게 보이곤 한다. 보살봉이라고 생각되는 암봉이 하나 나타났다. 로프는 없었지만 올라가기가 불가능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올라가기엔 좀 신경이 쓰이는 곳이었다. 올라가 보니 보살봉은 그 암봉을 내려간 곳 저만치에 솟아 있었다. 보살봉의 정상부분 20여미터는 올라갈 수 없지만 그 아래엔 3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테라스가 있었다. 산행기점에서 이곳까지는 오는 데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아름답다. 엊저녁 비로 옆 암봉위의 소나무끝이 더욱 생생한 초록빛을 발하고 있다. 뿌연 대기를 뚫고 내려온 햇살은 그야말로 청량한 빛깔을 분사하고 있다. 그 배경이 응달진 암벽이거나 응달진 산사면일 경우 그 빛은 배로 강열해진다. 보살봉테라스 앞 암벽 밑 골짜기 나목숲 속에 유난히 큰 소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그 소나무의 푸른 잎은 황갈색 배경과 무슨 형광작용을 하는 건지 작열하는 듯한 느낌을 주어 아른거릴 정도로 눈을 부시게 한다.
이곳에서 북곡리쪽을 내려다보면서 호연지기를 맛보는 것은 청량산 산행의 필수적인 아이템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보살봉은 2단계로 된 암봉이다. 사람들이 30명정도 쉴 수 있는 넓은 테라스 옆으로 높이 20여미터의 암봉이 다시 솟아 있다.
테라스도 상당히 높다. 경일봉쪽으로 뻗어있는 주능선의 쇠잔등이 같은 흐름이 완강하면서도 유연해보였다. 이렇게 유순한 길을 되돌아 본다는 것은 금방 올라온 위험한 암봉과 보살봉 일대의 경관이 있기 때문에 운치가 더해보였다. 비죽비죽한 암봉도 여러군데 보였다. 청량산 66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란 싯구를 되뇌면서 보살봉에서 내려다보니 지금까지 올라온 능선과 암봉이 절경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럴 경우 절경이라는 것은 스카이라인이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의미일 경우가 많다. 암봉과 육산이 적절히 어울리고 골짜기로 내려가면서도 능선의 선은 암봉과 소나무로 선이 다채롭고 화려하다. 그 윤곽들을 이어붙여 간단한 산모양 그림을 하나 그려보았다. 산의 입체감이 살아있는 산형도가 한장 되었다.
청량산의 주요경관은 보살봉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그 이전의 풍치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보살봉을 내려와 암봉아래로 난 길을 따라 주봉쪽으로 가면 보살봉의 모습이 칼날같은 봉우리로 판이하게 달라지면서 그 앞에 다시 낮지만 날카로운 봉우리가 장식품같이 앞서고 그 뒤에 능선봉이 하나 솟아 있다. 이 봉우리를 오르려면 길에서 왼쪽으로 바위위에서 드리워져 내려온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이 바위봉우리가 청량산능선의 한 가운데에 해당된다. 이 봉우리에서 골짜기를 내려다보면 청량산-축융산 골짜기가 아닌 청량산 자체 계곡이 펼쳐진다. 이 골짜기의 아래쪽에 청량사는 자리잡고 있다.
이 암봉에서 보살봉쪽을 보면 비죽하니 허공을 찌른 검은 회색의 칼날봉아래 키작은 노송 한 그루가 밑둥지에서부터 가지가 두개로 나뉘어 작은 테라스 위에 얹혀있다. 그 아래 비스틈히 기운 채 또 하나의 칼날봉이 서 있는 것이다. 이 칼날봉들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내가 걸어왔던 응진전 뒤의 밋밋한 육산능선이다. 그것은 하나의 완벽한 경관이었다. 수없이 사진찍고 스케치하고 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경관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일일히 기억하다간 머리크기가 두배는 되어도 모자랄 것이다. 이 암봉에서 청량산계곡을 내려다보면 오른쪽으로 주능선에서 달려내려온 암릉의 연속선 끝머리에 도봉산의 만장봉을 닮은 대암벽이 하나 치솟아 있다.
산 위에서 아래쪽에 암봉이 솟아 있는 것을 위에서 보면 독특한 리듬감을 느낄 수가 있다. 청량산은 어디랄 것 없이 아무데서나 암봉이 치솟고 있구나 하는 느낌도 든다. 그 암봉부근에서 골짜기는 병목처럼 좁아져 있다. 그러니까 청량사가 들어앉은 골짜기는 둥그런 형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골 한복판에도 야트막한 봉우리가 하나 자리잡고 있다. 위에서 보면 육산처럼 보이지만 골짜기를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면 아마 암벽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보살봉과 이 암봉 사이에 끼여있는 칼날암봉은 돌무데기가 뭉쳐 바위가 된 듯한 독특한 바위다. 돌이 깨어지면 그 바위를 형성하고 있는 돌들과 모래는 모두 무너져 한 무데기 돌 무덤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청량산은 이 암봉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 암봉에서 주봉을 보면 주봉에 접근하기전에 거대한 암벽과 협곡으로 생각되는 공간이 보여 난공불락의 성채를 대하는 듯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오르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감정을 전제한 경각심이었다. 거리는 이곳 전망대에서 약 1킬로쯤 되는 듯하지만 과연 오늘 주봉위에 설 수 있을까? 내가 이글을 메모한 이 암봉은 여러가지로 결정적인 암봉이므로 로프가 걸려있다고 귀찮대서 그냥 지나가버려서는 안된다. 이 암봉은 해발 약 830미터쯤 되는 암봉으로 능선바닥에서 20미터정도 솟아있는 암봉이며 전후에 로프가 설치돼 있다. 이 로프를 타고 내려오면 다시 오르막 능선이 되고 노송숲이 이어지다가 끝나는 곳에 전망대가 있다. 이른바 주봉을 외딴 독립봉으로 만들고 있는 굉장한 벼랑이다. 벼랑아래는 협곡을 이루고 있고 전망대 맞은 편으로 대암벽이 치솟아 있다. 줄잡아 주왕산을 대표하는 바위의 높이만큼은 높은 바위인듯하다. 전망대는 천길 벼랑위에 있는데 이 벼랑보다 훨씬높은 암벽이 시야를 가리고 콱 막아서 있었다. 몇개의 골을 이룬 채 거대한 배흘림기둥처럼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품이 경외감마저 자아낸다. 암벽 왼쪽으로는 촛대처럼 생긴 바위가 보이고 멀리 도산서원 앞으로 도도히 흘러가는 낙동강의 유로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실로 엄청난 곳이었다. 전망대에 골짜기로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길로 바위사이로 난 외길이었는데 로프가 걸려 있어서 주의하기만 하면 내려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진: 도산서원

>그러나 눈이 쌓여있거나 폭우가 내리면 상당히 위험할 것 같았다. 그렇게 골짜기바닥으로 내려갔다가 산등성이를 조금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길이 보인다. 이길을 따라 바위를 돌아올라가는 길이 또 아주 힘이 드는 급경사길로 두개의 거대한 바위 사이에 난 좁은 통로이다. 이 통로를 올라가면 안부가 되고 안부에서 다시 내려가서 바위사이로 난 급경사길을 올라가면 정상이 된다. 알고보니 정상은 강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강을 건너 들어올때 왼쪽 어깨 너머로 높지거니 치솟아 있던 암봉이 바로 정상이었다.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되풀이한 지 몇번이었고 로프타기를 한 게 몇번이었던가? 870미터 높이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노추산, 계방산, 백덕산에 비하면 말이다. 그런데도 청량산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도록 만들었다. 정상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면 거칠 것이 없다. 정상은 천길단애로 꺼지다가 두어번 암봉을 솟구친 뒤 바로 낙동강으로 함몰하여 시오리 물가의 거뭇한 단애로 퇴계의 찬탄을 자아내게 했던 절경을 만들고 있다. 이것이 청량산 산행의 끝머리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려오는 길은 첫번째 골짜기에서 바로 축융산을 바라보며 청량산 주계곡으로 내려오기만 하면 동네가 나오고 동네에서 왼쪽 밭중간으로 난 길을 따라 원래의 산행기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 길은 골짜기의 차도와 청량산 능선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길인데 세개의 선이 나란히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이 밭길에서 청량산은 마치 복습을 시키듯이 봉우리 들이 연장으로 솟구치며 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이 아닌가? 이런 희한한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악전고투했던 또는 비할데없는 전망을 제공했던 봉우리가 연이어 스카이라인을 형성해주며 가는 길에서 왼쪽 위로 치어다 보며 되짚을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산행을 대단원하기에 이 보다 적절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청량산의 이 코스는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었다. 이 길 중간에는 시야를 가로막듯 드높은 단애와 암벽이 눈앞에 막아서는 곳도 두어곳 있어서 하산길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여름엔 오후쯤이면 대단한 더위를 느낄만한 햇볕받이이지만 지금은 시원한 경관으로 산행을 끝마무리하기에 너무도 적절한 코스가 되어 준다. 이 길을 죽 따라가면 청량사에서 내려오는 커다란 도로와 만나는데 이길을 따라 내려오면 청량산 주도로로 나서게 된다.
주봉아래의 벼랑은 줄잡아 2-3백미터는 되어 보이는 대암벽이고 그 암벽위의 테라스는 산행기점에서 얼마 들어오지 않아서 미리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테라스다. 청량산의 모든 전망대는 단애위의 테라스로 되어 있는 것이 이 산의 하나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청량산은 그러니까 층암절벽으로 되어 있어서 절벽위는 언제나 펑퍼짐하다는 이야기다. 주봉에서는 뿌연 이내 저쪽으로 안동호가 보이고 낙동강은 희미하게 들리는 산명처럼 저아래 골짜기와 강옆 단애아래의 여울에서 물소리를 내고 있음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 광활함. 그것이 주는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만들어낸 광활함은 아니지만 나의 노력, 나의 자제, 나의 목표에 그것은 부합되었고 나는 그것에 더 감동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은 2시 30분. 단애 아래 가까운 곳에 붙끝처럼 생긴 봉우리가 내가 서 있는 단애를 바라보며 솟아 있는데 그 위엔 소나무가 두어 그루 자라고 있다. 낙동강 쪽으로도 잘 생긴 암봉이 하나 있다.
그러나 나는 시야에 들어와서 깊은 인상을 준 산의 모든 면들에 대해 확실한 기록을 해두려고 한다. 그런 것들을 다 그저 그런 것으로 치부한다면 산에 올라갈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도 가능해질 것이므로.


퇴계와 청량산:

이퇴계가 세계학계가 주목하는 성리학의 대학자로 학문의 깊이를 더하며 후학을 가르쳤던 도산서원은 청량산 옆 낙동강 물길을 따라 얼마 안가면 나온다. 퇴계와 청량산은 관계가 깊다. 자신이 "청량산 육육봉이 아는 이 나와 백구"라고 읊었던 청량산에서 소시적 그는 수학을 했고 자신의 호중의 하나에 청량산인이라는 것도 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조정에서는 나라에 공을 세운 그의 선조 어느분에게 청량산일대를 봉하였다는 얘기도 전한다. 즉 청량산은 퇴계가문의 산이라는 이야기다. 도산서원에 거주하며 후학을 가르치는 그에게 누군가 물었던 모양이다. "옛 사람으로 산을 사랑하는 이는 반드시 이름난 산을 얻어서 스스로 의탁하였거늘 이제 그대는 청량산에 거하지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여기에 대해서 퇴계는 청량은 깎아진듯 만길을 서 있고 위태롭게 절학을 다다랐는 만큼 늙고 병든이로서는 편히 있을 수 없었고 또는 메(산)를 사랑하고 물을 사랑함에는 이제 낙천이 청량을 지나치긴 하나 그 산중에서는 물이 보이지 않더구먼. 나도 청량에 거하고파 하는 소원이야 없지 않겠으나 청량산을 뒤에다 미루고는 이곳을 먼저 함은 대체 산수를 겸하며 늙고 병든 몸을 편안하게 함이었네라고 대답했다. 퇴계가 청량산을 두고 한 이 말은 청량산의 특징을 잘 표현해준 말이다. 청량산은 깎아진듯한 암봉들이 육육봉(12개봉)이나 되지만 물이 적은 산이다. 물론 산옆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지만 정작 산 자체는 메마른 산이라 젊다면 모르되 늙은 몸으로는 도산서원이 있는 도산이 오히려 살기에 좋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청량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퇴계의 눈은 항상 청량산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 시로 알 수 있다. 그의 "산을 바라보며"라는 시에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구름 메(산) 없으리오, 청량산 육육봉이 경개 더욱 맑노매라, 읍청정 이 정자에서 날마다 바라보니, 맑은 기운 하도 하여, 사람 뼈에 사무치네."라며 청량산을 읊고 있는 것만 봐도 가가 청량산을 보는 눈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이 가원저 "퇴계시 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