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原城 白雲山 1087m)

위치: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교통.숙박:원주시-서곡리행(후리사종점에서 하차-1일 9회 버스운행)
제천-차도리(백운면의 백운산 산행깃점 1일 5회 버스운행)
문화재와 볼거리: 철철 폭포(제천시 백운면 산자락부근)

겨울 백운산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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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은 강원도 원주시와충북 제천시 경계에 있다. 원주-제천의 중앙고속도로로 치악산을 넘는 고개(가리파재)가 치악산과 백운산이 연결되는 고리이다. 처음 백운산을 찾았던 계절은 봄이었다. 원주로 떠날 때만 해도 백운산이 어쩌면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산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꽃피고 새우는 4월하순"의 황금같은 일요일엔 거기에 걸맞는 아름다운 산에 올라야 하는데... 원주를 지나 충주로 빠지는 길로 들어서서 얼마 안가 돼지 사육사며 계사가 많은 동네를 통과하게 됐는데 그 지독한 냄새가 우리의 기대에 대한 실망을 예언해주는 것도 같아 건조기 “입산금지"만 아니라면 확실한 미봉인 국립공원 치악산 영원사 골짜기로 들어가버렸을 것이다. 산입구마저 마을이 커서 그런지 산만해 보였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백운산 골짜기는 만만찮은 심산유곡임을 짐작케 했다. 산 또한 언뜻 보아도 1000미터를 넘는 고봉 특유의 고고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우리의 최초의 환성은 후리사 버스종점의 냇가에 서있는 몇 그루 노송을 보았을 때 터져나왔다. 그 소나무는 개울 위로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를 드리운 채 잔뜩 봄물을 먹은 샛파란 침엽을 환한 봄볕에 빛내고 있었는데 개울에는 꽤 많은 수량의 맑은 물이 포말을 뿌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휘우뜸 계류 위로 가지를 뻗은 소나무와 부근의 바위, 그리고 작은 폭류가 어울어진 그 작은 풍경은 백운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은 최소한 이렇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백운산 계곡은 치악산의 명성에 가려 원주일대의 아는 사람만 찾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그 비경을 감추고 있다. 사실 이곳에서 가까운 치악산의 영원골 계곡만 하더라도 치악산에서는 대체로 알려지지 않은 계곡이지만 아름다운 계곡이고, 구룡사계곡, 상원사계곡, 입석대계곡등 무수한 계곡이 있어서 주변의 군소계곡은 여간 아름답지 않고서는 시선을 끌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올라가니 소용소골과 대용소골이 나뉜다. 우리는 소용소골로 들어 갔다. 차도가 닦여진 것이 산골짜기에 큰 마을이라도 있는가 싶었다. 인가 몇 채가 소용소골에 자리잡고 있었다. 비범한 계곡임을 보여주는 몇군데 아름다운 곳이 있었으나 인공을 가미한 흔적들이 있는데다 길을 만드느라 돌을 깨고 계곡에 굴러떨어진 돌들이 물가에까지 아무렇게나 쌓여있어서 비경은 속돼 빠졌거나 버려진듯한 인상을 주었다. 소용소골의 이런 꼴을 보고 대용소골과 소용소골이 합류하는 지점까지 다시 내려와 대용소골로 들어갔다. 대용소골은 처음 5분간은 평범한 골짜구니에 지나지않았다. 물은 평지나 다름없는 평탄한 골짜기 개울을 유순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주위의 풍경은 물가까지 잇대어 내려온 경사진 산언덕에 낙엽송이 울창하여 이제 막 2,3밀리 정도의 작은 솔방울 같은 무수한 침엽들의 미세한 뭉치를 수채화 브러쉬로 칠한듯 연초록으로 허공에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 흔한 진달래도 이곳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10여분 들어가면서부터 백운산은 역시 기대에 벗어나지않은 아름다운 계곡과 산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낙엽송의 앳된 솔잎이 숲속으로 내려비치는 봄볕에 그 파란 작은 잎들을 빛내고 산록 군데군데 핀 진달래가 역광으로 비쳤다. 연초록으로 물든 낙엽송이며 이따금 보다 진한 연두색 새잎의 활엽수들이 둥그스럼한 매스(덩어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단장을 서두르고 있었다. 초록색이라고 해도 그 변화는 무쌍했다. 엊그제 비로 불어난 개울은 어느때부턴가 격류 아니면 폭류를 이루어 골짜기안이 시끄러울 정도로 요란하게 흘러간다. 길은 골짜기바닥에서 점점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길 한쪽은 깊은 암곡을 이루기 시작한다. 나무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계곡은 수량도 대단하고 단속적으로 나타난 벼랑위엔 멋진 소나무가 서있는가 하면 벼랑아래를 적시며 맑은 물이 흘러가는 아름다운 계곡이 전개된다. 치악산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아름다운 계곡이다. 풍부한 개울 물은 삼각형의 바위골짜기를 맹열한 속도로 빠져나간다. 폭류와 암반위로는 물가 바로 위까지 낙엽송숲이 내려와 있다. 이곳에 녹음이 우거질 때의 시원함과 푸르름을 연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비오는 날 뽀얀 물안개를 뿜으며 V자형 골짜기를 훑어갈 폭류와 그 수량을 생각하면 정말 볼만할 것 같다.
유난히 물소리가 우렁찬 골짜기로 내려가 펀펀한 바위에 앉아 땀을 들인다. 이 뜻밖의 아름다운 계곡이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계곡은 초입에서부터 4km가 넘게 이어졌다. 골짜기의 계류를 건너뛰면서 길로만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예를 들어 지난 주에 찾았던 화악산 중봉아래의 큰골계곡은 아름답긴 했지만 길이가 2km도 채 안되는 것에 비하면 이계곡은 5km는 될 것 같다. 수량이 풍부하면 계곡은 더 아름다워진다.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물이 없는 메마른 자연경관보다 옥수가 흘러가는 흰암반이 있고, 물속에 발목을 잠그고 있는 벼랑이 있고, 암벽이 치솟은 숲이 있어야 새소리도 즐겁게 들리고, 바람소리도 시원하게 마련이다. 협곡 위로 깊은 담이며 소도 두어군데 나타나고 길가엔 잣나무숲이 우거진 산구비에 들어서면 몸과 마음은 비경을 찾은 충격으로 환희에 젖는다.

어느 산에 가든지 깊은 소를 보면 소를 형성하고 있는 물가 바위 위에 앉아 바닥이 어슴프레 보이는 깊은 물속을 하염없이 들여다 보고 싶어진다. 청계를 씻어내려온 옥수의 물기둥이 굼틀거리면서 자신의 공간속을 전방위적 무한동작으로 오르내리고 솟구치고 곤두박질하고... 그런 수류의 유연하면서도 투명한 움직임을 응시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용출과 침하를 반복하는 물의 다이내믹한 소용돌이, 수면에 비치는 벼랑과 그 위의 소나무, 간혹 바람이 불면 수면에 접히는 작은 물살, 그런 것들이 물이 끌어당기는 흡인력이다. 사실 그 물속엔 진지하게 들여다 보아야 할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계곡에 와서 소옆에 있는 세월의 검버섯이 핀 해맑은 빛깔의 바위에 한동안 무료히 앉아 물과 부근경관을 바라보는 이 과정을 생략하고 나면 산에 온 맛은 반감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산모롱이를 두서너번째 돌아가는 모퉁이에 아름다운 협곡이 있어 그런 시간을 좀 보내고 싶었으나 코스길에서 멀어 내려갈 때 다시 와 보기로 하고 그대로 지나쳐버린 것이 아쉽다. 초행길의 백운산이 만만히 않을 것으로 보여 시간을 아끼고 싶어서였던지도 모르지만.

왜냐하면 하산할 때 능선길에서 아침에 깊은 인상을 주었던 계곡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로 하여 소며 잣나무숲을 다시 볼 기회를 놓쳐버린 꼴이 되었다. 폭포소리가 크게 들리는 그곳 깊은 소가 길 아래로 보이자 이곳만은 지나칠 수 없다며 내려가 본다. 위에서 말한 소는 멀리서 볼 땐 푸른 물로 보아 짐작하기로는 바닥이 안보일 것 같았지만 가까이 가니 푸른 심연이긴 하지만 물이 맑아 바닥이 보였다. 그 심연으로 허연 물줄기가 내려 꽂히고 있었는데 햇빛이 묘하게 그 물줄기를 스팟트 라이트처럼 비추고 있어서 여간 아름답지 않았다. 그 물은 은은한 옥색 빛깔을 띠고 있었고 그 근처의 물줄기에서 솟아오르는 거품도 약간은 밝은 옥색빛을 띠고 있어 심연을 이룬 소의 암청색의 물색과 조화를 이루었다. 골짜기를 비추는 햇빛이 그 모든 것의 지휘자인 이 아름다운 소부근에는 빛의 온갖 색조와 명암과 음영이 그윽한 협곡의 풍광을 화려하게 빛내고 있었다. 더구나 주위에는 조그마한 잣나무숲도 있어 금상첨화였다. 원주에서 기껏해봤자 10킬로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 계곡이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인근의 치악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알려지지 않은 곳은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내버려둔다.

소의 오른쪽으로는 계류에 연하여 단애가 치솟아 있었는데 단애 틈틈이 새로 돋아난 잎들을 바람에 나붓기게 하고 있는 그리 크지않은 활엽수 한그루가 단애의 그늘을 배경으로 절벽가장자리에 뿌리를 박고 있었고 왼쪽으로는 소나무숲이 물위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다양한 물의 색깔, 폭포의 흰 명주 같이 환한 빛깔, 그리고 음험해보이는 시퍼런 소의 물속, 어두운 바위와 그것을 배경으로 한 나무잎의 연초록 색깔을 보니 경관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한가지 요소도 빠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제는 이제 갓 움이 튼 샛잎 들을 잔뜩 단 낙엽송을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두고 보는 것이 아름다왔다. 개천위 조그만 절벽 아래쪽으로 멀리 보이는 낙엽송 숲의 수채화같은 엷은 연초록 터치는 뒤쪽의 갈색조의 나무들을 배경으로 하여 시야를 싱그럽게 만들어주는 데 압권이었다. 이 골짜기에서는 꽃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계곡 깊숙이 걸어 들어가다가 골짜기 아래로 흘러가는 물소리와 물이 만든 아름다운 소와 폭류를 여러군데서 보았다. 한 4,5km 너머 들어갔을까 길은 왼쪽으로 꼬부라지고 큰 개울은 오른쪽 협곡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산길과 계곡이 갈라졌던 것이다. 그곳에서부터는 능선으로 급경사 오르막이 이어져 일행은 괴로운 표정들(작은 개울을 횡단, 낙엽송 숲으로 들어가는 길도 있다). 우리는 한 2,30분 걸어올라가다가 물소리가 들리지않다가 다시 들리는 벼랑아래 비좁지만 점심을 먹을 만큼은 넉넉한 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위에는 덩굴식물들이 잔뜩 우거져 있었지만 갈수기로 접어 들면서 줄기가 마르거나하여 만지기만 해도 부러지는 것들이 많았고 아직은 푸른 잎이 나온 나무들은 별로 없었다. 난초류의 노란 꽃이 피어있는 바닥을 제외하면 겨울이 지나갔다고 말해주는 증거는 우리들의 옷차림과 등줄기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빛밖에 없었다.
한 20분정도 걸으니 능선이 나왔다. 햇빛이 화사하게 산록을 비추고 있어서 더웠다. 사람키보다 더 큰 진달래가 군데군데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햇빛이 강열한 탓으로 처음에는 진달래의 분홍빛이 바랜, 탈색된 색깔로 눈에 들어 왔기 때문에 오월에 피는 철쭉보다 분홍빛이 적어 보인다. 진달래는 역광으로 보아야 제빛이 나는 꽃이다. 그런데 정면으로 햇빛을 받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진달래의 꽃잎 빛깔을 제대로 알아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위에는 진달래의 꽃색깔을 대조시켜 줄 푸른 잎과 가지는 아직 없었다. 일행은 이 능선에서 쉬기로 하고 필자 혼자만 어쩌면 정상일지도 모르는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흘끗 한번 쳐다보고 30분 정도면 갔다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정상으로의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그곳은 정상이 아닌 전위봉(前衛峰)이었다. 정상은 거기서 한 1킬로미터 정도 더 떨어진 곳에 별로 높지 않게 그리고 어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곳으로 가보지 않고 그냥 내려온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산의 정은 나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나 산에서 보는 정상과 전위봉사이의 거리는 속임수가 많다. 명지산 1250봉과 1267봉사이처럼 거리가 누가 보기에도 먼 것으로 치부되는 명백한 속임수(?)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지척에 있는 것 같은데도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봉우리들이 있다. 백운산 정상도 그러했다. 실제로 걸어가보니 예상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 호흡을 가쁘게할만한 경사는 어느곳에도 보이지않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주능선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능선을 조금 넘어서면 거기서부터 한 5분간은 상당히 가파른 경사가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정상능선인 탓으로인지 낙엽송도 제대로 잎이 나 있지 않았다. 마른 가지와 낙엽들 사이로 보이는 숲바닥에 파란 풀이 여기저기 돋아나 있었다. 그것은 5센티미터 정도의 키밖에 안되는 노랑제비 꽃들의 군락이었다. 땅바닥에 퍼져 피어있는 노랑 제비꽃 이외에는 이렇다 할 푸른 색이라고는 없이 겨울 색깔 그대로의 산록이었다. 주능선과 지능선 사이에는 평평한 분지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낙엽송숲이 넓게 자리잡고 있었다.
정상은 평범하지만 비로봉에서 남대봉으로 이르는 장대한 치악 능선이 다 보이고 백운산 뒤쪽 운학리(제천시 백운면)계곡이 내려다보인다. 대용소골을 이루는 지능선과 우측의 서쪽으로 장벽을 이룬 것 같은 긴 능선이 보인다. 모든 1000미터가 넘는 정상이 그렇듯 이곳 정상도 비할데 없는 웅대한 조망을 이루고 있다. 치악능선 뒤로는 사자산-백덕산 능선 그리고 그 앞에 가까운 곳에 감악산이 솟아있는 것이 보이고 있었다.

이 백운산은 언젠가 무박산행을 한다고 소백산으로 갈 때 가리파재에서 야밤에 흰눈을 들쓰고 달빛아래서 야광산처럼 빛나던 산이었다. 30분이면 갔다오리라 했던 게 한시간 반이나 걸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하산은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아침에 본 그 아름다운 계곡으로 가기로 했으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못해 능선길로만 하산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본 아름다운 계곡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면서도 능선길의 재미(?)를 발견하고는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선에는 계곡에는 보기 드문 소나무들이 많았고, 진달래도 꽤 많이 보였다. 능선의 어떤 부분은 한쪽이 단애로 되어 조망이 좋았고 전망대라고 할만한 곳도 있었다. 노송도 더러 있고 어떤 곳은 고개를 숙여야할만큼 키작은 소나무 숲도 있었는데 진달래는 내려 갈수록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오후로 접어들어 상당한 각도로 기운 햇살이 숲사이로 들어와 연분홍 진달래 꽃잎을 화사하게 비추었다. 엄청나게 높은 단애 위에서 계곡을 내려다 보기도했고 소용소골의 물소리를 귓가로 흘리기도 했다(이 능선은 대용소골과 소용소골 사이로 뻗어내려간 능선). 내려오면서 강풍을 만났다. 맑은 날 오후의 예의 건조한 바람이 모자를 날리고 능선의 가랑잎을 쓸어가고 쳐진 소나무가지들을 위로 치켜올리곤 했다.

바람소리는 물소리로 바뀌고 그 사이에 새소리가 끼여든다. 화사한 하얀 꽃을 피운 산벚꽃나무가 나타났다. 하얀 작은 벚꽃은 지기 시작하고 이미 푸른잎들이 꽃을 가리우려 했지만 그 하얀 아름다움은 가슴깊이 정갈한 빛의 파동을 전해오는 듯하다. 그 작은 꽃잎을 볼 때 하얀 색깔의 청초한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날의 백운산 꽃은 뭐니 뭐니해도 난초과에 속한다는 노랑 제비꽃이었다. 600미터 능선위쪽의 가랑잎이나 두터이 쌓인 낙엽층을 비집고 커야 7,8mm 정도 될까 말까한 길이가 작은 밥풀만한 노랑제비꽃들의 명징하고도 선열한 색채선언이었다. 그것이 초봄 백운산 주능선의 압권이었다. 그 노랑색은 “너희 사람들아, 노랑색을 본 적이 있느냐? 인간의 노란색은 노란색이 아니란다. 거기에 현혹되지 말라. 내 저고리를 보아라. 이것이 진짜 노란색이란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노랑 꽃은 황소잔등이 같은 밋밋한 땅바닥을 뒤덮으며 넓게 퍼지고 가고있는 푸른 땅딸막한 잎(정확히 어떤 식물인지 모른다)과 대조를 이루었지만 약 40센티미터 정도 반경을 사이에 두고 경사진 능선사면에 배합도 훌륭하게 드문 드문 그러나 아름답고도 조밀하게 피어있었다.
내려갈수록 나무가지에 푸른 눈이 싹트거나 아니면 잎이 나와 이제 숲이 우거질 날도 멀지 않은 듯했는데 이깔나무 가지에 돋아나기 시작한 푸른 연초록색 싹까지 포함하여 숲바닥은 모두 꽃으로 이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능선길은 소용소골과 대용소골 사이에 끼인 능선길이었는데 능선길을 타면 결국은 소용소골로 내려올 수 있다. 오늘 산행에 6시간 30분 가량이 소요됐다.

(4 월하순)